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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2년 07월 29일 금요일 흐림 (늙어가는 게 서럽다/민폐 캐릭터)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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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22시 30분이 된다. 옷만 갈아입은 뒤 바로 침대로 뛰어들어 태블릿을 붙잡고 빈둥거리다 23시가 넘으면 자려고 기를 쓴다.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기 때문에 한 번을 안 깨고 잔다 해도 여섯 시간을 간신히 자는 셈이다. 물론 최소한 한 번, 많게는 세 번 정도 깨니까 여섯 시간을 자는 날도 손에 꼽는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지만 엄~ 청 피곤하다. 요즘은 날이 더워서인지 일어나자마자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하다. 몸이 너무 무겁다.

하지만 다음 날이 쉬는 날이거나 저녁 출근하는 날이면 어지간해서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제도 그랬다. 23시를 넘겨서 누웠는데 태블릿 붙잡고 있다가 자정을 넘겨버렸다. 새벽에 여러 번 깼고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또 깼다. 빈둥거리다가 살짝 자고 나서 결국 일곱 시에 일어났다. 다섯 시간 반 정도 잔 걸로 측정됐더라. 하지만 피곤함은 1도 느낄 수 없었다. 쌩쌩하다. 정오 지나면 질질 늘어질 게 뻔하지만.

20대 때에는 22시가 넘어 퇴근해서도 새벽까지 술 처마시고 아침에 출근했는데 대체 어떻게 그 짓을 했나 궁금하다. 체력이 정말 좋았나보다. 그 때 체력을 하도 써서, 미래의 체력까지 끌어당겨 써서 지금 이 모양인가보다.

 

 

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냉면 먹는 영상을 봤다. 집에 인스턴트 냉면이라도 있으면 대충 끓여 먹었을텐데 비빔면만 있고 육수가 있는 냉면 재료는 없다. 시켜먹으려고 장바구니에 넣기까지 했지만 21시가 넘은 걸 보고 포기했다. 예전 같았음 그냥 시켰을텐데 그래도 자제력이 병아리 눈꼽 만큼은 커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끓여서 비빔 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국물 없는 라면, 짜장 라면이나 비빔면은 세 개가 기본이고 한 개 더 끓여서 네 개를 먹냐 마냐로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두 개와 세 개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운동하러 가야 하니까 욕심내지 말고 두 개만 먹자고 생각해서 버섯만 추가해 호다닥 입으로 밀어넣었는데 배가 부르다. 세 개 끓였어도 다 먹었겠지만 그럼 운동은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먹으니 체력도 떨어지고 먹는 양도 줄어든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툭하면 나이 핑계 대는 걸 보고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늙어보니 정말 나이 먹을수록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벌써부터 이런데 50대가 되면 어떻게 될지. 문제는 그 50대도 머지 않았다는 거다. 세월 가는 게 무섭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복직할 때 근무지를 선택해야 했다. 세 군데 중 한 곳을 골라야 했는데 세 군대 모두 맘에 들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지금 있는 곳을 선택했더랬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난리였고 신천지 교인들이 이 동네에 모여 질알 염병을 한 덕분에 회사가 사실 상 봉쇄된 상태였다.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고른 곳이 ㅇㅇ이었다. 본사 만큼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근무 환경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일 자체가 나와 맞았다. 일본어와 관련된 업무라고 해서 긴장을 많이 했더랬다. 고작 1년 6개월 배운 일본어로 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고. 하지만 업무의 대부분은 일본어와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일을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우리 회사에서 다루는 업무는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고 원하지 않는다고 주어지지 않는 게 아니다. 일을 만드는 주체가 따로 있어서 그것들이 설치면 바빠지고 그것들이 잠잠하면 한가한 거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걸 원한다. 그게 안 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장질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내 일이니까,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내가 주도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업무 특성 상 그게 안 된다.

ㅇㅇ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일을 가져와서 내가 편한대로 처리를 한 뒤 성과를 내면 됐다.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았으며,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가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좋았다. 가능하다면 퇴직할 때까지 ㅇㅇ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사와 무관하게 옮기게 되었고 이 동네로 와서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예전의 업무를 다시 하는 중이다. 업무에 애정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보니 의욕도 없고 그저 월급 도둑질만 안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 불편한 건 편리하게, 부당한 건 정당하게 바꾸려 들었던 건 그저 예전 얘기일 뿐.

 

여기까지만 보면 ㅇㅇ은 굉장한 천국이었던 것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필이면 팀장들이 죄다 무능하거나 이상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팀이 넷인데 그 중 셋이 무능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몸 담고 있는 팀의 팀장이 최악이었다.

오래 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데 사람이 털털하고 참 좋아 보여서 나름 호감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만나 세상 참 좁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같이 일을 해보니, 예전에 저 사람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짜증을 달고 살았는지 알겠더라.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무능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전혀 없었다. 팀의 우두머리니까, 일주일 동안 팀이 한 일을 종합해서 정리하고 발표하는 게 주 업무였다. 처음에는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팀원들이 도와주는 게 당연한데 시간이 지나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더라. 본인이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불러 이것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매 주 반복됐다. 이제는 직접 하실 때도 되지 않았냐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도와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한 명씩 지쳐 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와주던 팀원들을 죄다 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공명심에 불타 자기 능력을 과대 평가하고 남들 눈에 띄기 위해 무리하는 신입 사원이 팀장의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었다.

팀의 공은 부풀리고 과는 줄여 보고하는 게 당연한데 반대로 했다. 업무 파악이 안 되니 종합해서 정리하는 것부터 안 되는데 그것조차 남한테 맡겨놓고, 정작 발표 능력도 떨어져서 벌벌 떨며 조사조차 제대로 못 써가며 읽듯이 발표했다. 그러다 질문이 나오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팀장이 저 모양이니 팀원들이 한 일은 점점 평가절하 됐고 외부로부터 있으나마나 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팀원들 중 선배 축에 속했기에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 팀장 위의 관리자에게 몇 번이나 하소연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건 아니라고. 결국 팀장과 팀원들이 모여 불만을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어렵사리 만들었지만 하필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당신은 일을 이러저러하게 엉터리로 합니다, 그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원 모두에게 해를 끼칩니다, 당신 때문에 팀원들이 모두 고생합니다, 가장 바라는 건 팀장 자리를 내놓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얘기해도 될까 말까 였는데 다들 면전에서 싫은 소리하는 걸 꺼려하다보니 둥글게 둥글게 돌려 말했고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인사 명령이 나 이 쪽으로 옮겨 온 거다. 그리고, 어제 L氏에게 전화가 왔다. 정신과 소개해달라고.

 

L氏는 ㅇㅇ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다.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사람이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 비호감으로 바뀌었다. 꼰대질이 기본 스킬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하다가 효과적인 업무 처리 방법을 발견했다. 팀원들과 공유하면 업무 효율이 높아질 거니까, 다들 바빠 보이지 않을 때 모여서 간단히 얘기 좀 하자고 해서 일하다 이러이러한 방법을 알게 되어 공유한다며 소개를 했다. 다들 아~, 와~ 하고 반응하는데 L氏가 뜬금없이 일한 지 1년이 채 안 된 사람을 지목하며 무슨 얘기인지 알겠냐고 묻더라. 그 사람이 알겠다고 하니 그럼 다시 설명해보라더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이가 없었다. 다들 같은 동료인데,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저런 식으로 행동을?

아니나 다를까, 내가 떠난 뒤 완장질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나는 좀 꼬장꼬장하고 잘못 건드리면 질알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내 눈치를 적잖이 봤을 거다. 그런데 내가 없어지니 제 세상을 만난 거다. 물론 더 신난 건 무능하기 짝이 없는 팀장 놈이었겠지만.

완장질하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팀장이 무능하니 자연스럽게 팀장 대리가 된 거다. 그렇게 일을 했었는데 최근에 팀장 때문에 좀 힘들었던 모양이지. 어제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 정신과 소개해달라고 한 거다. 내가 예전에 ㅍㅌ에 있는 정신과에 다녔던 걸 알고 있으니까. L氏가 ㅍㅌ에 살고 있으니까.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게 연락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최근 팀장이 미쳐 날뛰고 있다 하더라. 이 미쳐 날뛴다는 게 물리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무능함이 대폭발하는 중이라는 얘기다.

본인의 무능함은 본인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을 거다. 팀원들이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팀원들이 모두 등을 돌렸으니까. 업무 파악도 좀 제대로 하고 일을 일답게 할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든 편하게 빠져나가려고 잔머리를 굴린 결과가 팀원 탓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팀원 탓을 해서 자기가 까일 상황에서 몇 번 빠져 나가다 보니 그게 해결책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툭하면 팀원 탓을 하며 빠져 나갔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 탓을 하며 본인의 무능함을 탓하는 자리에서 빠져 나갔는데 관리자가 그 직원을 불러 나무란 모양이다. 본인은 한 적이 없는 말인데 그런 말을 하냐며 한 소리 들으니까 울컥 했겠지. 출처를 따져보니 팀장이 말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팀장은 무능함에 덧붙여 없는 말 만들어 이간질한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 상황이다. 전화로 듣기만 하는데도 속이 뒤집히더라. 저 딴 게 팀장이랍시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한 달에 500만 원 넘게 받아간다. 하... ㅽ

 

 

다른 팀에도 무능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 못하는 팀장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바뀌었다. 하필이면 바뀐 팀장이 똑부러지게 일하는 사람인지라 그 팀 사람들은 천국을 만났다. 늪에 빠져 있던 발이 최고의 온천수에 담겨진 거다.

내가 몸 담았던 팀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시궁창에 발을 담그고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팀장을 바꾸는 거다. 하지만 직급과 경력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다.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쳐냈으면 지금의 꼴은 안 봐도 됐을텐데, 자그마한 종양일 때 제거가 가능했는데 그걸 미루고 미뤄서 결국 암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도와줄 방법이 없는 걸.

 

L氏는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고 나한테 위로라도 듣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L氏에 대해서도 그닥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지라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었다. 정말로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건지, 그저 하소연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기 어려운 사이였는데 전화까지 해서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을 한 걸 보면 정말 힘든 상황일지도 모르겠고.

 

살다보니 참으로 다양한 월급 도둑놈을 만나게 된다. 그 중 최강은 ㅇㅇ에서 같이 일했던 저 팀장 놈이고. 문제는, 지금처럼 의욕없이 그저 왔다갔다 하면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내가 저 꼴이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세상에 절대가 어디 있어. 내가 나이 먹고 저 팀장 같은 쓰레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거다.

 

 

참...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ㅇㅇ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이고, 퇴직할 때까지 저기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팀장 놈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팀원들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해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거겠지. 저런 형편없는 쓰레기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하아...

 


 

벌써 아홉 시가 넘었다. 대충 씻고 도서관에 가야겠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은 책이 별로 없어서 좀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려 했는데 어제 전기 자전거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했다. 이 날씨에 페달링하면 땀이 줄줄 흐를텐데. 이번에는 그냥 근처 도서관을 이용할까 싶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도서관에 다녀오면 땀이 날 게 분명하니 그대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일찌감치 출근할까 싶다.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면 시간만 까먹는다. 빨리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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