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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2년 09월 06일 화요일 비옴 (태풍 힌남노)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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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출근했더니 오늘 열 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더라. 응?

 

 

예전 같으면 '내일 태풍이 온다니까 퇴근하지 말고 의자에서 쪽잠 잔 뒤 내일 낮 근무 하세요'라고 했을텐데, 와~ 이제는 우리 회사도 그나마 상식 수준의 결정이 이루어지는고나 싶더라. 늦저녁에 밖에 나갔다 온 사람에게 비 오냐고 물었더니 안 온다고 해서 태풍 영향을 안 받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퇴근하려고 나갔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내가 밖에 나온 걸 알았다는 듯이 비가 많이 내린다. 차선은 아~ 예 안 보이고, 여기저기 패인 도로는 제대로 보수하지 않아서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촤아악~ 촤아악~ 하고 굉음이 나는데다 속도가 훅훅 줄어든다. 코로나 지원금이랍시고 20만 원씩 주고 남은 예산 반납할 정도면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폭의 인도와 그 위에 박힌 전봇대와 가로수나 정비하고 도로나 재포장했음 좋겠다. 차선도 다시 그리고. 21세기에 동네 철물점에서 페인트 사서 그린 건지 차선이 아예 안 보일 수가 있나?

 


 

집 근처의 넓은 공터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다는데 기초 공사하다가 문화재가 나왔단다. 그래서 공사가 중단됐었는데 그 이후 더 이상 발굴된 게 없는 건지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하면서 소음 방지벽 설치한답시고 접근하지 말라며 플라스틱으로 길가를 막아놨는데 그 때문에 길가에 마구 세워놓던 차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차 댈 데가 없으니까 내가 사는 곳까지 와서 집 앞에 미친 듯 차를 세우더라니, 이제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다시 길가에 마구 세우고 있다. 왕복 2차로지만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차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한다. 거지 발싸개 같은 동네.

 

아무튼. 저런 꼬라지인지라 태풍 온다니까 남의 집에 주차하는 개념없는 AH 77I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것들은 없었다. 하나 남은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바로 잤을텐데,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맘이 편하다. 허기도 지고.

바로 컵라면 하나 끓여 먹고, 과자까지 먹은 뒤 잤다. 알람도 안 맞추고.

태플릿으로 뉴스 켜놓고 잤다. 다음 날 근무인데 태블릿 켜놓은 채 자는 건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새벽에 몇 번 깼는데 네 시쯤 깨서 밖을 보니 비가 오는 것 같긴 한데 바람은 덜 하다. 아직 태풍의 영향이 없는 건가 싶었는데 일곱 시가 조금 넘어 밖을 봤더니 바람이 엄청나다. 방에 있는 창문은 동쪽으로 나 있고 거실에 있는 창문은 남쪽으로 나 있는데 방 창문에는 빗방울이 하나도 안 튀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거실 쪽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 소리가 굉장하다. 무서울 정도다.

 

뉴스에서 계속 태풍 피해를 언급하고 있는데 호들갑 타령하는 쪼다 AH 77I 들이 많다. 아... 이래서 서울 공화국이라 부르는고나. 잠수교도 통제되고 서울도 비가 많이 왔다는데 지난 번의 집중 호우 만큼 피해를 입지 않아서인지 호들갑이네 어쩌네 하고 있다. 지방은 피해를 꽤 입었다는데도 말이다.

포항 쪽 보니 난리도 아니다. 포스코에 불이 났단다. 포스코는 어지간한 군부대는 갖다댈 수 없을 정도로 보안 통제가 철저한 곳이라 언론사도 취재가 쉽지 않을 거다. 시청자가 멀리서 찍은 제보 영상이 고작이던데 CCTV를 보니 엄청 심각한 모양이다. 그 와중에 물 고인 곳 앞에서 그냥 가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게 분명한 차를 보이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이슬란드에서 눈 쌓인 곳을 두고 고민하던 내 생각이 나서.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눈이나 비 위에 닿는 순간 느끼게 된다. 망했고나.)

 

인덕 이마트 부근이란다. 차가 물에 잠긴 것을 보니 심각하다.

예전에는 죄다 논이었던, 내가 학교 다니면서 걸어다녔던 길이다. 인덕 국미... 초등학교 근처.

 


 

이번 태풍 관련 보도로 알게 된 게 두 가지 있다. 본인이 쓴 현장 리포트일텐데 버벅거리지 않고 제대로 읽는 기자가 드물다는 것. 지방에 살고 있으니 사투리를 쓰거나 특이한 억양이 있는 거야 그러려니 한다. 아니, 오히려 지방색을 드러내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애먼 곳에서 끊어 읽거나 말을 얼버무려 듣기 힘들 정도로 읽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전국에 방송되는 거니까 연습을 했을텐데 저런 수준인 건가 싶더라. 기레기, 기레기 하는데 신문이나 인터넷 언론 뿐만 아니라 방송국 쪽도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진 것 같다. 박진주가 연기했던 간호사처럼 감정없이 쌍팔년도 AI처럼 말하는 기상 캐스터도 있고.

다른 하나는 21세기에 대체 무슨 장비를 쓰기에 스튜디오와 현장의 의사 소통에 딜레이가 생기는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블루투스 모노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면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지 않나? 태풍 때문에 기지국이 죽어 통신이 싹 다 죽은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대체 뭔 장비를 쓰기에 스튜디오와 현장이 동시에 떠들거나 아무 말도 안 하고 서로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열 시까지 출근하라고 했으니까 아홉 시에 씻고 나와 아홉 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 밖을 보니 평소보다 더 막히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출근 길에 물이 고여 있거나 도로가 망가져 다닐 수 없는 일이 있는지는 나가봐야 아는 거고. 평소보다 10분 정도는 먼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보다 네 시간 늦게 출근하니 맘이 편하다. 날마다 이러면... 그 때 가서는 또 두, 세 시간 늦게 출근했음 좋겠다고 궁시렁거리겠지. 만족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이기심이니까.

 

아! 자다 깨서 어제 지른 약, 주문 취소했다. 살 빼는 데 도움이 된다는데 그럴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추석 연휴 전에 배송해준다더니 주문하니까 태풍 때문에 안 된다고 메시지 보내는 꼴이 같잖아서였다. 취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홉 시가 다 되어 간다. 슬슬 씻으러 가야겠다.

 


 

이무기 급은 아니지만 동네 공원 산책로에서 발견되어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뱀 정도 되는 녀석을 출근 전에 내보냈더랬다. 그런데도 회사에 가니 급ㄸ 시그널이 왔다. 다만,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화장실로 가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나마 양호해져서 집이 아닌 곳에서도 대방출이 가능한 몸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에는 기를 쓰고 참다가 대참사가 일어난 적도 있을 정도로 아무데서나 내뱉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위험하다는 신호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화장실로 가서 조심스럽게 착석. 푸드득~ 푸드득~ 새가 난다. 굉장히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동 시간대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던 듯 하다. 괄약근을 미세 조정해봤지만 새 날아가는 소리가 계속 난다. 듣는 이 없는 가운데 외롭게 울려 퍼지는 푸득거림이지만 쪽 팔린다.

썩 만족스럽지 않지만 급한 불을 끈 뒤 나가려는데, 나가려는데, 나가려는데. 문이 안 열린다. 응?

 

 

아무리 밀고 당겨도 마찬가지. 꿈~ 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구출해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망설이다가, 남에게 기대면 안 된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변기 뚜껑을 닫고, 밟고 올라서서! 나는 나를 넘어섰다!

 

 

칸막이 위에 공간이 있는 형태라서 옆으로 넘어갔다는 소리다. 화장실에서 『 버티컬 리미트 』에 버금가는 액션을 할 줄이야. 자리로 돌아가 포스트 잇을 꺼낸 뒤 잠금 장치 고장이라고 써서 방금 전까지 날 가둬뒀던 곳으로 향했다. 문 앞에 포스트 잇을 붙이고 돌아왔는데 그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더라. 팀장에게 화장실에 고장난 문이 있다고 했더니 본인이 니퍼를 들고 직접 가보더라. 그리고... 갇혔다. ㅋㅋㅋ

다행히 니퍼 덕분에 담치기를 하지 않고 자력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나서 시설 담당자가 와서 고쳤다. 때가 잔~ 뜩 껴서 그것 때문에 뻑뻑해지다 못해 안 움직이게 된 거라더라.

 


 

퇴근하려고 밖으로 나갔더니 하늘이 파~ 랗다. 포항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데 역대급 설레발 운운하는 ㅽㅺ들은 저 파란 하늘을 보며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것이겠지. 인덕이 이렇게 언론에 오르내린 건 인덕산 때문에 포항 공항에서 비행기 뜨고 내리는 데 지장이 있다고 한창 떠들어댔던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 냉천에서 놀던 아이가 물살에 휩쓸려 죽은 적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냉천 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거기서 엄청난 사고가 났다. 내가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더러운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사람 사는 게 참... 희한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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