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을 정상적으로 마쳐놓고, 점심시간이 끝나니까 느닷없이 이제부터 방학이라고 통보한 게 2020년 2월 28일이었다(https://40ejapan.tistory.com/549). 원래는 방학까지 시간이 좀 남았지만, 코로나가 일본에서 대유행하면서 방학을 앞당긴 것. 꽤 지쳐있었기에 얼씨구나 싶더라고. 마트에 가봐야 마스크도 없고, 괜히 돌아다니다 코로나에 걸리면 골치 아프겠다 싶어 고이 모셔두었던 인스턴트 먹거리들을 파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 대기하라 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일본 유학이 끝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는 잠잠해지지 않았고,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 없이, 졸업식조차 생략 당한 채 그대로 졸업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급하게 집을 빼서 한국으로 돌아온 게 3월 28일(https://40ejapan.tistory.com/584).
한국으로 돌아온 후 DHL을 통해 받은 졸업장 안에는 날려 먹은 수업에 대한 인쇄물이 들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하지 못한 게 2주 정도 되려나? 수업료를 환불하거나 하지 않고, 다음에 일본에 오게 되면 단기 유학으로 처리해서 수준에 맞는 반에 넣어 수업을 듣게 해주겠다는 거다. 대충 넘어가도 되는 걸 저렇게 해주는 게 일본답다고 생각했다.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서 나 내일부터 수업 듣고 싶어요! 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사전에 학교로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게 단기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간은 2022년 3월까지였고.
2022년 3월. 그렇다. 이미 지나버린 거다. 학교 쪽에서도 2년 넘도록 꼭꼭 걸어 잠그고 자유로운 왕래를 막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누구나 그러했을 거고.
아무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한 번도 일본에 갈 수 없었다. 일본 정부가 흥선 대원군의 혼이 쓰인 건지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가버렸으니까. 그러다 비자없이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해진 것이 며칠 전인 11일부터.
예상대로 첫날부터 일본 공항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그럴 만하지. 일본은 한국인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그게 가식적이네 어쩌네 해도 인상 쓰지 않고 웃으며 서비스해 주는 것부터가 이미 호감이다. 게다가 도로 어디를 봐도 불법 주차된 차가 없으니 사이드미러에 부딪힐까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가며 빠져나갈 일도 없고.
외국으로 나가면 먹고 마시고 싸는 게 달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자주 있는데 일본은 그런 걱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먹고 마시는 것은 대부분이 익숙한 맛이고, 싸는 것도 유럽처럼 돈 낼 필요가 없다. 공중 화장실도 잘 되어 있고. 게다가 혐한으로 인한 피해가 종종 알려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의적이다.
왼쪽으로 잔뜩 치우친 클리앙에서도 일본 여행 간다는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던데, 좀 의외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만 하고나 싶더라. 문재인 대통령을 물고 빠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까 문재인 대통령을 한국의 트럼프라 부르는 일본이 못 마땅하겠지. 게다가 그 뒤에 등장한 정부가 지금의 매국 친일 무능 정부니까.
그렇게 기를 쓰고 일본에 갈 필요가 있냐면서, 일본어도 못하면서 왜 가냐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싸잡아 욕하고 있더라. 일본어 타령하는 사람들은 여행 가는 나라의 말에 모두 능숙한 걸까? 일본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영어나 일본어를 몰라도 큰 불편함이 없다'임을 모르는 걸까?
온라인에서 대~단한 애국하고 자빠졌다 싶기도 하고, 일본인의 한류 열풍은 당연하고 한국인의 일본 여행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침략 범죄자고 우리는 희생자이기 때문에 입장이 다르다고 보는 걸까?
뭐,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애국한다고 자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 자유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여행가면 매국노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니 이것과 관련해서는 그만 떠들어야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매국노로 몰아가고픈 사람들이 내 말에 설득당할 리 만무하다. 나 역시 온라인에서 대활약하는 애국자들의 말을 듣고 일본에 가는 걸 그만두거나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댓글로 소중한 가르침을 주어 애국자로 개몽시키겠다는 마음이 든 분들이 계시다면 그만두세요. 저는 제 나름의 자리에서 애국하며 위국헌신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아랫동네에 살고 있기에 인천에서 비행기 타기는 어렵고, 근처에서 바로 탈 수 있나 알아봤는데, 없어진 항공편이 아직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가장 가까운 곳이 김해 공항. 다행히 버스로 김해 공항까지 가는 게 어렵지는 않다. 버스 시간은 비행기 표를 구입한 뒤 알아보면 될 것이고.
대한항공, 아시아나, 에어 부산, 제주 항공, 진에어, 티웨이, 피치 항공…. 항공권 가격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이러냐 싶다. 게다가 부산에서 가는 건 항공편이 많지도 않다. 스카이 스캐너와 인터파크 투어에서 알아본 항공권보다 항공사에서 직접 알아보는 쪽이 싸긴 한데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너무 비싸니까 멘붕이 왔다.
항공권 가격을 검색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제주 항공에서 51,000원에 파는 표를 발견했다. 보통 저 정도면 항공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은 0㎏이기 마련인데 그것도 아니다. 가지고 탈 수 있는 게 10㎏이고 수화물로 맡길 수 있는 게 15㎏이다. 돌아오는 표를 보니 그때에도 역시나 51,000원짜리 표가 있다.
다 팔리기 전에 잽싸게 예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결제 예상 금액이 20만 원을 훌~ 쩍 넘어간다. 응? 왜?
...... 유류 할증료가 8만 원 가까이 붙었다. 게다가 시설 이용료랍시고 4만 원을 또 뜯어간다. 결국 22만 원이 넘어버린다. 제기랄.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다. 내가 일본 간다니까 그때 맞춰서 같이 가겠다고 급하게 여행 계획을 세운 직장 선배는 인천에서 가는 거라 나보다 훨씬 비싸게 사야 한다. 뉴스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표가 50~60만 원 한다기에 거짓말 좀 적당히 하라고 구시렁거렸더랬다. 20~30만 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본 건 딱 비행기 표! 의 가격이었다. 유류 할증료와 공항 이용료 따위가 붙으면 50~60만 원 수준이 되고 만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세 번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돈.
실제로 선배가 표를 살 때 약간의 도움을 줬는데 주말에 출국, 평일에 귀국하는 일정인데도 항공권 가격이 50만 원 가까이 했다. 남들보다 일찍 누리려면 하자 있는 물건을 받거나 값을 비싸게 치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긴 한데... 이건 좀 심하네.
일본에 가서 딱히 어디를 보고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예전에 살던 집 앞에 가서 학교까지 걸어가 보고, 매일 보던 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 싶다. 드론을 띄우는 게 가능하다면 드론으로 촬영도 하고 싶은데 일본에서 외국인이 드론을 띄워 촬영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100g 이상은 무조건 등록해야 하는데 외국인은 그 절차가 엄~ 청나게 까다롭다고 한다. 손전화로 영상을 찍으면 많이 흔들릴 테니 짐벌이 있었음 좋겠는데 막상 구입하자니 돈이 조금 아깝다. 내 성격 상 손에 들고 다니며 촬영하는 것도 상당히 꺼려질 것 같고. 가방 어깨 끈에 부착해서 찍을 수 있는 게 있을텐데 그런 걸로 알아볼까? 집과 학교 근처 뿐만 아니라 교류 센터까지 가는 3㎞ 거리의 길도 걸어보고 싶고, 텐노지 역 뒤쪽의 코코이찌방야에서 카레도 먹고 싶다. 그냥 소소하게, 일본에서 살던 시절의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일주일 내내 오사카에서 궁상떨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간사이 공항에서 바로 나고야로 넘어간 뒤 세키가하라에 가볼까 싶다. 임진왜란 때 조선 땅을 밟았던 다이묘들도 세키가하라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갈라져 싸웠기에 우리와 아예 무관한 역사라 보기도 어렵고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니까. 검색해보니 긴테쓰 패스로 가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자세한 계획을 짜야 할 것 같다. 세키가하라 쪽은 자그마한 도시라서 별로 볼 게 없다니까 기후현의 유명한 곳을 보거나 나고야 쪽을 구경하고, 오카야마로 넘어가서 마사미 님 뵙고, 다시 오사카로 넘어와 살던 곳과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궁상이나 떨어야지. 시간이 되면 교토에 한 번 다녀오고. 항공권을 질렀으니 출발, 도착은 정해졌지만, 나머지 일정은 전혀 잡힌 게 없다. 울릉도 다녀온 뒤 여유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 중.
내용 | 비용 |
항공 운임 | 102,000원 |
공항 시설 이용료 | 48,700원 |
유류 할증료 | 78,800원 |
TOTAL | 229,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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