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 울릉도까지 가는 배는 원래 09:20에 출발한다. 하지만 기상 상태가 나빠 07:00에 출항하는 걸로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결항되면 여행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데 천만다행. 일찍 가면 그만큼 울릉도에 더 머물 수 있으니까 좋긴 한데, 일찍 일어나야 하니 피곤하다. 게다가 어두울 때 운전해야 한다. 으~ 😩
일본 여행 때 묵을 숙소를 알아보느라고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22시가 넘어서야 짐을 꾸렸다. 23시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눈이 떠졌을 때는 꽤나 잤다는 생각이 들어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하려 했다. 하지만 시계를 봤더니 고작 한 시간이 지났더라. 더 자도 된다는 생각에 기쁜 맘으로 다시 잠이 들었는데 두 시간 뒤에 또 깼다. 늦잠을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니 부담스러워 깊이 잠들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세 시가 넘어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컵라면과 즉석 밥으로 요기를 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은 뒤, 차에 올랐다.
여유 있게 출발했으니 천천히 가자고 마음먹었다. 크루즈 모드로 느긋하게 달리고 있는 와중에 하품이 멈추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쉴 것을,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결혼 전에 갑작스러운 우울함이 몰려온다는데, 여행 전에 오는 후회 같은 것도 매리지 블루와 비슷한 걸까?
포항 여객선 터미널
승선권을 판매하는 곳에 가서 예약했다고 하며 신분증을 보여줬더니 바로 표를 내어줬다. 배에 오를 때까지는 할 일이 없어서 손전화로 만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멀미약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터미널 안에 있는 편의점은 문을 닫은 상태. 백령도 다닐 때는 멀미를 안 했으니까 별일이야 있을까 싶어 그냥 안 먹기로 했다.
이윽고 사람들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죄다 영감, 할매들이라 제대로 줄을 서는 것 자체가 무리. 엉망진창이다. 대체 왜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다들 나이가 벼슬이라 생각해서 대접받으려 드는 건가? 예전에는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라 저렇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쟁통에 먹고살려면 남들보다 먼저 나서야 한다는 거다. 제대로 줄 서는 건 바보짓이라는 거지. 밀치고 앞으로 나가서 먼저 받고 잽싸게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렇게 살았단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열 살 꼬맹이였다 해도 2022년에는 여든이 넘는 나이가 된다. 여객선 터미널에 있는 영감, 할매들은 그 정도 나이는 안 되는 것 같았고. 결국 부모가 하는 짓을 보고 배운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데... 출발부터 영 언짢다.
배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딱 느낌이 왔다. 자야 한다. 무조건 자야 한다. 안 그러면 죽을지도 모른다. 멀미할 거라는 확실한 느낌이 왔다. 다행히 출발 전에 제대로 못 잤으니 어쩌면 푹 잘 수 있을지도….
2층보다는 1층이, 앞쪽보다는 뒤쪽이 멀미하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정말 심한 사람은 자리 깔고 눕는 게 최고입니다. |
어림도 없다. 집에서도 깨지 않고 세 시간 이상을 잘 수 없는 몸인데 불편한 의자에서 가능할 리가 없지. 한 시간을 자고 나니 잠에서 깼다. 눈을 감고 애써 잠을 청하는데 사무실에서 계속 연락이 온다. 일본 여행을 가기 전에 교육받아야 하는데 언제 받겠냐는 거다. 나와 부서장이 번갈아 가며 휴가를 써서 31일 전까지 만날 수 있는 날이 없다. 그러니 나보고 휴가 중에 나와서 교육을 받으라는 거다. 부서장은 높으신 분이라 휴가 중에 교육하는 건 안 되고, 나는 하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 휴가 중에 교육받으러 나오라는 건가? 짜증이 왈칵! 났다. 휴가 중인데 계속 연락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적당히 대답하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깐 손전화 들여다봤다고 속이 울렁거린다. 도착할 때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울릉도 도동항
비닐봉지 손잡이를 귀에 거는 불상사 없이 울릉도에 도착했다. 배가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떴으니 당연히 도착도 빨랐다. 밖으로 나가니 여행사 이름이 적힌 팻말이 여러 개 보인다. 호감형의 젊은 남자가 들고 있는 팻말에 내가 속한 여행사 이름이 보이기에 그쪽으로 갔다. 나는 카카오 메이커스에 올라온 여행 상품을 구입해서 울릉도에 갔는데 최소 인원이 한 명이더라고. 달랑 한 명만 가도 여행을 진행한다고? 여행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 아닌가?
괜한 걱정이었다. 여행사가 손해볼 장사를 할 리가 없지. 육지에서는 A 여행사, B 여행사, C 여행사,... 로 제각각이지만 울릉도 현지 여행사는 몇 안 되니까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된다. 김○○은 A 여행사, 박××은 B 여행사를 통해 울릉도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고 해도 현지에 도착하면 같은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가 같은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 다니게 되는 거다.
가이드가 사람들을 다 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남 산책로로 넘어가는 다리 앞에 모였다. 배가 평소보다 일찍 떠서 시간이 비니까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산책 좀 하다가 13시에 다시 모이라고 하더라.
대명호텔로 가면 된다기에 그쪽으로 갔더니 1층에 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 선반이 있다. 거기에 가방을 두고 카메라와 드론만 챙긴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밥은, 형편없었다. 둥근 접시에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 덜어 먹는 방식인데 동네 기사 식당만도 못했다. 안 먹으면 손해라 생각해서 대충 먹긴 했는데 울릉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뭔가 특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한 시간 넘게 남았기에 행남 산책로 방향으로 가 전망대에서 주섬주섬 드론을 꺼냈다. 잠깐 날려봤는데 바람이 심해서 불안하다. 게다가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내일은 온종일 비 온다는데, 강수 확률이 80%라는데, 비 오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할지 걱정이 됐다.
행남 산책로
관광 안내 센터 옆에는 회 센터가 있다. 조업하는 배를 가진 사람만 거기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1층에서 가격 흥정을 해서 생선과 해산물을 구입한 뒤 2층에 올라가 먹는 시스템. 가게 이름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배 이름과 똑같이 붙여놓고 장사를 한단다. 나는 여행 이틀째에 가봤는데 새우는 씨가 말랐는지 볼 수도 없었고 수족관도 대부분 비어 있었다.
사진 찍으면서 슬렁슬렁 걷다 보니 어느덧 막다른 길. 왼쪽으로 꺾으면 저동으로 갈 수 있는 것 같은데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야 하니까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줌으로 당겨 찍었으니 저 정도지, 실제로는 굉장히 멀리 있었다. 하지만 흐릿해더라도 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 두 명이 독도가 보인다면서, "저렇게 선명하게 독도가 보이는데 일본 놈들이..." 라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독도가 보인다는 거지? 줌으로 당겨도 배 밖에 안 보였는데. 🤔
거북 바위
가이드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부른 뒤 타야 하는 버스의 번호를 알려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버스에 탄다. 아... 패키지 여행이 이런 거고나. 처음 해보는 거라...
버스에 타 자리를 잡았다. 정원이 37명이던가?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채워 나간다. 해안 도로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게 오후 일정인 모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가 뚫리지 않은 곳이 있어서 해안 도로를 일주하는 게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가능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예전 방식의 터널은 신호등이 번갈아가며 켜져서 기다렸다가 가야 했는데 이제는 왕복 2차선의 터널이 새로 뚫려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단다. 2025년 5월에는 공항까지 완공된다 하니 울릉도를 찾는 사람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좀 더 여행하기 편리해지겠지. 아직은, 여러가지로 열악하다.
꽤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거북 바위. 내려서 사진을 좀 찍고 나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드론부터 꺼냈는데 바람이 엄청나다.
맘 같아서는 영상도 찍고 셀프 샷도 찍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니까 영상이고 뭐고 드론 추락할 일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아쉽지만 귀환시켜야겠다 싶어 서있는 자리로 드론을 되돌리려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니까 내 쪽으로 날아오지를 못한다. 나중에 찍힌 영상을 보니 바람에 밀려 훅~ 밀려났다가 허겁지겁 자리 잡기도 했더라. ㄷㄷㄷ
결국 N 모드에서는 바람을 이겨내지 못해서 S 모드로 두고서야 근처까지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난 뒤 어렵사리 착륙시켜 드론 회수.
울릉 천국
패키지 여행은 처음이라 뭐 파는 곳에 들리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돈을 만만치 않게 받으면서도 이러는고나 싶어 좀 실망했다. 마가목 공장에 들렀지만 내리지 않았다. 이후 가수 이장희가 산다는 곳에 들렀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드론부터 꺼내서 여기저기로 날려가며 사진만 좀 찍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이후 호박엿 파는 곳에 들리기에 내려서 화장실만 다녀왔다. 뭘 사야겠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는다. 현지에서 살 필요 있나, 인터넷으로 사면 될 것을. 현지에서 사는 건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다는 장점 말고는 딱히 좋은 점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구입해서 직접 들고 가지 않는 한, 즉 가게에서 택배로 보내준다고 하면 다른 걸로 바꿔치기 할 가능성도 있고, 공장에서 찍혀 나온 물건은 인터넷으로 사는 것에 비해 아무런 장점이 없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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