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는 일기 예보가 엄청 안 맞는다고 하더라. 섬이라 특히나 안 맞는다고. 실제로 내가 머무는 기간에도 온종일 비가 온다고, 강수 확률이 80%였지만 비는 아침과 저녁에 잠깐 내리는 게 전부였다.
울릉도까지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지 않아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새벽 다섯 시 무렵 귓가에 왜애앵~ 하는 모기 소리가 들렸다. 자는 동안은 물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콘센트에 꽂는 모기향이 작동 중인데도 피 빨겠다고 설치는 걸 보니 꽤나 강한 녀석인가보다.
화장실에 가서 체중 감량을 위해 힘 쓰고 있는데 오른쪽 허벅지에 시커먼 모기가 착! 앉는다. 잽싸게 후려쳤더니 시커먼 피가... 빨간 피가 아니라 시커먼 피다. 사람 피가 아닌 걸까? 찝찝해서 잽싸게 휴지를 적셔 닦아냈다. 볼 일을 보고 난 뒤 바로 샤워를 했고.
그렇게 모기를 잡았다 생각했는데 방에 들어갔더니 또 왜애앵~ 하는 소리가 난다. 어라?
모기가 또 있었다.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천장에 붙은 걸 발견. 마침 방에 스프레이 형태의 모기 약이 있었기에 여러 차례 뿌려대서 겨우 잡았다.
혐오 사진(모기 근접샷)이 나올 예정입니다.
휴지로 짓이겨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또 다시 왜애앵~ 다시 모기 찾기에 나서 한참만에 발견, 이번에도 사살에 성공했다. 어디서 모기가 자꾸 들어오나 싶어 봤더니 방충망 사이가 벌어져 있다. 제기랄.
카멜리아 모텔 502호에 묵게 된다면 창문 꼭 닫으세요. 창문 열면 방충망 닫아놔도 모기 들어옵니다. |
여행 2일차. 오전에는 독도에 가고 오후에는 A 코스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대명 호텔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기에 일찌감치 일어나 씻고 숙소를 나섰다. 식당에 도착하니 입구에 줄을 서 있다. 안쪽을 스윽~ 봤더니 바글바글. 별로 맛도 없던데 줄까지 서가며 먹고 싶지 않아 아침을 건너 뛰었다.
독도로 가는 배는 도동항에서 출발하는 게 있고 저동항에서 출발하는 게 있다. 도동항에서는 07:20에 출발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09:00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나는 저동항에서 08:00에 출발하는 배를 타게 되어 있었는데 당연히 연기될 거라 생각했다. 일단 모이라고 한 시간에 가이드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버스에 올라타라고 한다. 저동항으로 이동한단다. 응? 연기 안 되고 뜨는 거야?
독도 상륙!
버스를 타고 약 10분을 달려 저동항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80% 확률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일기 예보가 엉망진창이라 생각했는데, 저동항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나게 쏟아진다. 땅에 하얀 알갱이가 보여서 다시 봤더니 비가 아니라 우박이다. 진짜, 엄청나게 쏟아진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죄다 터미널의 처마 밑으로 몰려 갔다. 마침 방수가 되는 기능성 점퍼를 입고 있었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맞아가며 물을 하나 샀다. 멀미약 먹어야 하니까.
우박은 그냥저냥 맞겠는데 비는 안 되겠더라. 너무 심하게 내린다. 나는 젖어도 되지만 가방에 있는 카메라는 젖으면 안 된다.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2,000원을 주고 우비를 샀다. 그리고 처마 밑으로 대피했다.
자리를 찾아 갔더니 세 개의 시트가 붙어 있는데 하필 가운데. 에효... 멀미약을 먹고 나서 멍 때리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한다. 같은 모텔을 지정받은 부부였다. 인사를 나누고 짧게 몇 마디 나눴다. 부인과 앞, 뒤로 자리가 쪼개졌기에 바꿔드릴까요? 라고 여쭤봤는데 괜찮단다. 한 20분만 가면 된다고.
응? 20분? 아닌데? 두 시간 간댔는데? 90㎞ 가까이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입구에서 멀미약 먹으라고 계속 말하던데? 아저씨한테 내가 알기로는 두 시간이랬더니 정말이냐며 놀란다. 혹시나 해서 잽싸게 검색을 해본 뒤 두 시간 걸린다는 글을 찾아 보여줬더니 자기가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고, 그럼 부인과 자리를 바꿔주겠냐고 한다. 자리를 바꿔 앉은 뒤 바로 눈을 감았다. 금방 잠이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독도에 도착했다. 창 밖으로 독도가 보이더라. 빨리 내리려는 사람들로 입구가 엄청 붐빈다. 하아... 진짜, 이런 거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문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차근차근 내리면 좀 좋아?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뒷 문으로도 내리더라. 그쪽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줄을 섰다. 영감들, 할매들은 어김없이 새치기와 밀치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ㅽ
1년 중 독도에 상륙할 수 있는 날은 60일 정도 밖에 안 된단다. 그래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다고 하더라. 할아버지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니 덕을 쌓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두 집 살림을 했다고 하니 딱히 덕을 쌓은 분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도 살아계실 때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쳤으니 덕과는 거리가 멀고. 나 역시 직장의 여러 꼰대들에게 공공의 적인지라 덕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운을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독도에 방문하기로 한 18일은 온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었고, 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출항이 연기되는 등 아무래도 기대하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하루 전인 17일도 해상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독도 접안이 가능했었다는 것 정도?
못 내리면 어쩔 수 없다고,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기에 상륙이 가능했을 때 더욱 기뻤다.
http://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439
어디를 봐도 사람, 사람, 사람. 사진 찍는답시고 사방에서 난리다. 만세 소리도 들려오고. 사람이 안 나오게 사진을 찍는 게 불가능하다. 게다가 갈 수 있는 곳이 지극히 제한적인지라 다닐 수 있는 곳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동쪽 끝에 왔다는,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인 곳에 왔다는 상징적인 점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갈 수 있는 곳도, 볼 수 있는 곳도, 너무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드론 비행도 불가능... 한 건 아니지만 절차가 아~ 주 복잡한지라 촬영도 못했다. 드론을 띄우려면 사전에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독도 상륙은 현지 도착 후 선장이 결정하는 거라 미리 전화를 해서 촬영을 하네 마네 하기도 애매했다.
동쪽 끝 표지가 있는 곳에서는 아줌마들이 줄을 서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근처의 다른 곳을 찍다가 그 앞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향해 줄 서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면서 목소리 높이고. 가관이다.
주변 사진만 찍다가 그래도 독도를 밟은 내 사진 정도는 남겨놔야겠다 싶어서 손전화로 몇 장 찍었다. 맘에 드는 사진이 1도 없다. 원판 불변의 법칙 따위... 쳇!
갈 수 있는 곳에서 최대한 사람 안 나오게 사진을 찍은 뒤 배에 올랐다. 배에서 창문 밖으로 사진 찍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정작 독도에서는 5G(SKT)가 빵빵하게 터졌는데 말이지.
독도까지 가는 데 두 시간, 현지에 머무는 게 30분 정도, 돌아오는 데 다시 두 시간. 이렇게 오전 일정이 끝났다. 미리 정해진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잠시 쉰 후 오후 일정이 시작된다.
내수전 일출 전망대
오후에 관광 안내소 앞에 모여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도 두 자리만 비운 채 꽉 찼다.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갔다가 봉래 폭포를 보고 나서 오징어 파는 곳에 간단다. 또 물건 파는 곳에 들리는 건가? 하아...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꽤 심했다. 거리가 그닥 길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영감, 할매들인지라 오르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드론을 띄워 촬영을 하고 잠시 쉬다가 내려왔다. 오뎅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사먹을까 하다가 참았다. 다음으로 갈 곳은 봉래 폭포.
봉래 폭포
입구의 매표소에서 예쁘장한 처자가 나오더니 표 샀냐고 물어보기에 버스 타고 왔다고 대답했다(입장료 2,000원이 있지만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으니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올라가는 길은 그닥 가파르지 않지만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오르는 것보다 길다. 어느 쪽이 힘드냐고 한다면 내수전 일출 전망대 쪽이 더 힘들다.
봉래 폭포는... 뭐,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드론을 띄워 몇 장 더 찍은 뒤 다시 내려왔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올랐는데 갑자기 안녕하세요~ 하고 누군가가 인사를 한다. 약장수였다.
하! 21세기에... 파스 파는 사람이었는데 12,000원에 판다고 했다가 앞에 있던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가 10,000원에 달라고 여러 번 말하니까 11,000원에 준다고 했다가 얼마 안 남는다면서 징징거리더리 결국 10,000원에 팔더라. 저런 걸 산다고? 21세기에? …… 사더라.
내가 고등학생 때. 20년도 더 됐지. 포항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종종 탔었는데 휴게소에 멈춰 있을 때 물건 파는 사람이 꼭 탔더랬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번호가 적힌 표를 나눠주고는 앞에서 세 개인가 네 개의 번호를 부른다. 당첨되었다며 상품을 준다는 거다. 희한한 건, 나는 항~ 상~ 항상! 당첨됐다.
당첨됐다고 주는 건 시계였는데 수수료인가 뭔가 하는 명목으로 10,000원만 달라고 하더라. 나빠 보이지 않았던지라 10,000원을 주고 시계를 받아 부모님께 드렸는데, 몇 달 뒤 같은 버스에서 또 당첨이 되니까 그제서야 이상하는 생각이 들더라. 부모님은 내가 드린 시계를 차지 않고 놔두셨는데 다시 한 번 천천히 보니 몇 천 원도 아까울 정도로 조잡한 것이었다.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한테 당첨 번호를 주고 돈 뜯어가는 양아치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 때였으니 눈 뜨고 코 베인 거고.
버스에서 약 파는 사람을 보니 저 시절의 바보 같았던 내가 떠올랐다.
봉래 폭포에서 내려와 오징어 파는 가게에 들린다기에 내리지도 않았다. 마침 비가 내리기도 했고. 버스에서 비 내리는 걸 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 일정도 끝. 저녁은 각자 알아서 먹는 거니까 오늘은 독도 새우를 먹자고 다짐했다. 회 센터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죄다 손전화를 들이밀고 뭔가를 찍고 있더라. 뭔가 싶어 손전화가 향하는 곳을 봤더니...
너무나도 선명한 무지개가 쫘~ 악~ 나중에 숙소 쪽으로 갔더니 근처 미용실에서도 사람이 나와 사진을 찍고 있더라. 역시, 흔한 모습은 아닌가보다. 카메라로 여러 장 찍었는데 아무래도 실제보다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손전화로 다시 찍었다. 손전화 쪽이 훨씬 쨍~ 하게 잘 나오는 것 같다.
여행 둘째 날에 간 곳은 대구 반점. 독도 반점은 쉬는 날이었다. 대구 반점의 해물 짬뽕이 1,000원 더 비싸다. 맛은... 독도 반점 쪽이 나은 것 같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시켰는데 울릉도도 경상도에 속해 있으니까 당연히 참소주가 있을 줄 알았건만, 참이슬 밖에 없단다.
25,000원이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는데... 보통 돈을 주면 한 손으로 돈을 받으면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건네주잖아? 그런데 오른손으로 돈을 받으면서 왼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그대로 다시 가져간다. 응? 뭐지?
현금 줬다고 두 마리 더 준다며 추가로 담더라. ㅋ
반주로 소주 한 병 마셨지, 맥주 여섯 캔이나 들이 부었지, 꽐라가 되어 ㅇㅇ의 직장 상사에게 전화해서 신세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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