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이벤트, 일본에서 같이 공부했던 홍콩 친구의 서울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홍콩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S짱은 내 나이 ÷ 2를 해야 동갑이 될 정도로 젊은 친구지만 인싸 of 인싸인지라 아싸인 나와도 적잖은 친분이 있다. 따로 말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았는지(아마도 라인에 떴을테지. 😝) 생일을 챙겨준, 고마운 녀석이기도 하다.
코로나 때문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로 돌아갔지만 S짱은 일본의 전문 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까지 해냈다. 금요일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퇴근 시키면서 토요일 여덟 시 전에 출근하라 하는, 소위 '블랙' 기업에 다니는지라 좀처럼 연락이 안 되는데, 11월 초였나? 술 마시고 주사가 발동(!)해서 당연히 안 받을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덜컥! 받아버리더라.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주절주절 떠들다가 한국에 오라고, 왜 안 오냐고 징징거렸다. 오기만 하면 숙소부터 먹고 마시는 것까지 내가 다 책임 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2박 3일로 한국에 오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
걱정되는 건 두 가지. 하나는 짧은 여행 기간이다. 나는 최대한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편이고,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다니는 편인지라 2박 3일이라는 기간은 당최 이해가 안 되더라. 대체 뭘 보러 오는 거야?
다른 하나는 여행 시기였다.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온단다. 35,000원 짜리 방이 150,000원으로 뛰는 시기인데 괜찮은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
부랴부랴 호텔×닷컴에 접속해서 방이 있는지 찾아봤다. 가장 중요한 건 위치였고 그 다음이 주차. 가고 싶어하는 곳을 보아하니 종로 근처인지라 숙소 위치도 그 쪽으로 잡아야 했고, 차를 가지고 가지만 서울에서는 지하철로 돌아다닐 거라서 주차장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연말이랍시고 방 값을 말도 안 되게 올려 부르지 않는 곳이어야 했고.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맘에 드는 숙소를 찾았다. 종로에서 7㎞ 정도 떨어져 있으니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고 주차도 가능하다. 숙박 업소 특유의 뽀샵질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으로 볼 때에는 방 상태도 꽤 좋아 보였고. 망설이는 사이에 방이 나가버릴 수 있으니까 S짱과 친구가 쓸 트윈룸 하나와 내가 쓸 싱글룸 하나를 부랴부랴 예약했다.
2박 3일이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한국에 도착하는 시각이 다섯 시, 한국을 떠나는 시각이 밤 열 시였다. 꽉~ 꽉~ 채운 2박 3일이다. 그나마 다행이고만.
도착 예정 시각이 다섯 시지만 피치 항공이니까 연착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다 입국 수속하네 뭐하네 하면서 시간을 까먹다 보면 여섯 시에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이나 버스가 다닐 시간이긴 하지만 '한국 땅 밟기만 하면 내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 빵~ 빵~ 치고는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픽업을 가기로 했다.
낮 근무를 마치고 한숨 자야 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졸린데 집에만 오면 말똥말똥해진다. 억지로라도 자려고 했지만 간신히 한 시간을 채운 뒤 눈을 뜨고 말았다. 결국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이 넘어 대충 짐을 꾸린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한 게 한 시.
어두울 때 운전하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고속도로는 그럭저럭 달릴만 했다. 차가 없으니 오히려 편하더라.
차를 가지고 인천 공항에 가는 건 처음인지라 살짝 쫄았다. 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고. 하지만 단기 지상 주차장은 자리가 꽤 많이 남아 있더라. 주차 요금도 하이패스로 결제할 수 있어서 편했다. 어렵잖게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운 뒤 공항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인천 공항에 발을 들이는 건지. 지난 11월에 일본에 다녀오긴 했지만 김해 공항을 통해서 나갔기 때문에 인천 공항은 거의 3년 만이었다.
틀림없이 예상보다 늦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만에 하나라도 일찍 나와서 나를 기다리게 되면 미안하니까, 미리 기다렸다. 한~ 참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 그 와중에 못 알아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여섯 시가 넘어, 일곱 시가 거의 다 되서야 모습을 드러낸 S짱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바로 알겠더라. ㅋㅋㅋ
잘 지냈냐, 힘들지 않았냐, 좀 잤냐, 어제(여행 오기 하루 전)도 출근했냐, 질문을 퍼부으며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라면 인천 공항에서 서울까지는 한 시간 정도. 이틀 전에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던 S짱의 친구를 픽업해야 한다. 서울에서는 길가에 차를 세워 누군가를 태운다는 게 꺼려지는지라, 일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친구를 만나 캐리어를 받아든 뒤 차에 넣기로 했다.
숙소 체크인이 15시였기에 몇 시간 동안 차를 세울 곳이 필요했다. 예전에 종묘 공영 주차장을 본 기억이 있어 검색해봤더니 요금이 어마무시하다. 5분에 400원이다. 한 시간이면? 4,800원. 열 시간이면? 48,000원이다. 장시간 주차는 별도의 요금이 책정되어 있던데 종묘 공영 주차장은 그런 것도 없다(24시간 세워 놓으면 11만 원 넘어간다. ㄷㄷㄷ). 하지만 국가 유공자는 80% 할인이 된단다. 열 시간 세웠을 경우 38,400원이 까져서 9,600원이 된다.
그러나...
함정이 있었다. 국가 유공자 할인은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국가 유공자 유족은 할인 혜택이 1도 없다. 뭔가 쌔~ 해서 좀 더 알아봤더니 그렇게 나오더라. 80% 할인된다고 얼씨구나~ 하고 갔다가는 거덜날 뻔 했다.
부랴부랴 '모×의 주차장'이라는 앱을 설치한 뒤 종로에 있는 주차장을 알아봤다.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하루종일 세워놓는 데 13,000원인 곳이 있더라. 위치도 종로 타워 뒤 쪽이라 딱이고. 급하게 결제를 마쳤다.
운전과 관련해서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세 가지 있는데 하나가 눈/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 다른 하나가 어두울 때 운전하는 것, 마지막 하나가 서울에서 운전하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에 수 년을 살았지만 단. 한. 번. 도. 서울에 내 차를 가지고 간 적이 없다. 하지만 큰소리를 친 덕분에 '어두울 때' & '서울에서' 미션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출발했음 좋았을텐데 하필 출근 시간에 물리는 바람에 차가 엄청나게 막혔다. 그 와중에 길마저 잘못 들어서 서부 간선 도로에 올라타버렸다. 빨리 빠져나가고픈 마음에 샛길이 보이자마자 그 쪽으로 빠져나갔더니 돈 받는 곳이더라. 하이패스로 결제되는데. 졸지에 2,500원을 더 냈다. 젠장...
한참을 달리다 유턴해서 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 간신히 종로에 도착했다. 헤맨 덕분에 많이 늦어버렸고 우리를 기다리던 S짱의 친구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오질라게 미안하더라. 잽싸게 친구의 캐리어를 넘겨 받았다. 주차장에 가서 싣고 올테니 잠깐 기다리라 하고 부리나케 뛰어 차에 다녀왔다. 맨 처음 갈 곳은 홍대였는데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김家네'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는데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대화를 들어보니 조선족인가 싶더라.
떡만두국과 우동, 치즈 김밥을 시켰는데 우동 대신 오뎅이 나왔다. 우동 시켰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그래서 영수증을 보여줬다. 버렸으면 우기는 걸 보고도 아니라고 할 수 없었을 거다. 엉뚱한 음식이 나왔는데 미안하다던가, 다시 하겠다던가 하는 말이 없다. 잘못 나온 음식을 되돌려주고 다시 기다리는 게 번거로워서 그냥 먹겠다고 했다. 실수에 대한 대응이 일본과 너무 다르니까 S짱과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더라. 쪽 팔렸다.
나올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떡만두국이 나오지 않아 물어봤더니 만드는 중이라더라. 그런데 또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다시 말했더니 주방을 향해 어떻게 됐냐고 큰 소리로 물어본다. ……… 모르고 있다. 하고 있다더니, 까~ 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떡만두국은 한~ 참 있다 나왔다. 미안해서 양을 많이 줬다는데 그런 거 필요 없으니 주문이나 제대로 받으셨음 좋겠다. 우리 말고 다른 팀의 김밥도 잘못 나갔다. 엉망진창이다. 정신 없이 바쁘지 않았는데 말이지.
근처의 ATM 기기에서 돈을 찾았다. 일본 통장일텐데 한국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냐니까 유니온 페이(은련)를 지원하는 ATM 기기라면 가능하다고 한다. 역시나 글로벌한 S짱.
택시를 타고 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지하철을 탔다. 홍대는 20년 만에 가는 것 같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만날 양화대교 넘나들면서 신촌이랑 홍대를 휘젓고 다녔더랬지. ㅋㅋㅋ
S짱의 친구가 클럽에 가고 싶단다.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나이 때문에 입구에서 커트 당할 게 분명하고, 너희들은 옷 때문에 못 들어갈 거라고 했다. 정 가고 싶으면 옷부터 사라고 했다. ㅋㅋㅋ
인생네컷인가 하는 사진 찍는 가게를 보자마자 광분하더니 돌진한다. 그런데 가게 안이 엄~청 지저분하다. 그런데도 신나는 모양인지 이것저것 가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더니 사진을 찍고 나왔다. 낮에 다른 곳을 구경하고 어두워진 뒤 홍대에 갔어야 했는데, 이건 내 실수다. 애들이 홍대 타령하는 바람에 아침 댓바람부터 갔더니 뭔가 휑~ 하고. 아쉽긴 한데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나 싶은 사람이 뭔가 촬영 중이던데 관심이 없어서 본체만체하고. ㅋ
MBTI로 운세 보는 곳에 가서 점도 보고, 오락실에 가서 펄떡거리며 뛰어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좀 쉬기로 했다. 사진을 보여주고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했더니 한 군데 고르더라. 걷기에 좀 멀다 싶었지만 차 타기도 애매해서 그냥 걸어갔다.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시켜 시간을 보내고, 그 와중에 대만에 있는 M짱에게 전화했다. S짱의 전화로 걸었으니 당연히 S짱이라 생각하고 받았을텐데 대뜸 내가 일본어로 나불거리니까 엄청 당황하더라. 그래도 금방 나인 걸 알아차렸다.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수다를 떨었다.
슬슬 움직여야겠다 싶어 이화여대로 향했다. 캠퍼스가 예쁘다는 이유로 중국 애들이 그~ 렇~ 게 이화여대에 간다더라. 카카오 택시를 불러 애들은 뒤에 타고 나는 앞에 탔는데 등받이가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서 있어서 엄~ 청 불편했다. 조절하자니 그것도 귀찮아서 뭔가 되게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서 갔더랬다. 캠퍼스에 가니 고등학생 대상으로 학교 홍보 같은 걸 하고 있더라.
대충 둘러보고 토끼굴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도착. 버스를 타고 광화문 광장에 갔다. 좀 더 즐거워하며 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싱겁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서점이 근처에 있으니 구경하고 가자고 꼬셔서 교보 문고에 들어갔다. 핫트랙스에 가서 펜과 노트 등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사고 싶은 게 잔뜩이었지만 참았다(결국 다녀와서 인터넷으로 질렀다. -ㅅ-).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데도 당최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와~ 진짜... 여자들은... 무섭다.
어두워지기 시작했기에 슬슬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세 명 모두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뺀 뒤 숙소로 향했다. 어두운데다 서울에서 운전하는 거라 엄청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있긴 한데 좌우 폭이 엄청 좁아서 한참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힘들게 차를 세운 뒤 체크인. 그냥 모텔 수준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방은 생각보다 컸고 깨끗했다. 숙소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씻고 나서 밥 먹으러 가자고, 준비가 끝나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갈 준비가 다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한참 후에 라인으로 메시지가 와서 시켜 먹자고 한다. 나는 괜찮으니까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고 했더니 시켜 먹자고 한다. ㅋㅋㅋ 숙소에 발 담그고 나면 다시 나가기 힘들지.
교×치킨에서 치킨을 시켰다. 그리고 나서 편의점으로 가서 군것질거리와 음료수, 맥주를 샀다. 옷도 안 갈아입고 있기에 뭐했냐고 하니 짐 정리를 했단다. 음... 남자와 여자의 여행은 달라도 한참 다를지니...
애들 먼저 올려보내고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치킨을 받아들고 올라갔다. 여자 애들 방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내 방으로 오라고 해서 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기 시작. S짱이 텔레비전을 제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얘는 뭐, 나보다 더 잘 만진다. 한국 사람 아니냐? ㅋㅋㅋ
그렇게 옛날 얘기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같이 공부한 게 3년 전인데, 엄청 오래된 것 같다.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건 나 뿐인 줄 알았는데, 내 나이 반토막의 S짱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찍은 사진 보면서 낄낄거리고, 부지런히 수다 떨다보니 22시가 넘어버렸다. 내일 또 놀러 나가야 하니까 빨리 가서 자라고, 씻지도 않았으니까 냉큼 가라고 등 떠밀어 내보냈다.
침대에 누워 남은 맥주 한 캔을 마시다가 하마터면 쏟을 뻔 했다. 위험하다 싶어 마시던 맥주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잠깐 눕는다는 게 그대로 기절. 자다가 새벽에 눈이 떠져서 봤더니 불도 켜져 있고 텔레비전도 켜져 있다. 둘 다 끄고 나서 바로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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