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  행 』/『 해외여행 』 2023, 캄보디아

2023 캄보디아 여행 ⑦ 뚜얼 슬랭 추모 박물관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3. 18.
728x90
반응형

 

 

우리나라에서 에어컨을 켜면 ▼를 아무리 눌러도 18℃ 아래로는 안 떨어지지 않나? 여기는 16℃가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더라고. 2℃ 차이를 느낄 정도로 민감한 몸뚱이는 아니지만, 켜놓고 잤더니 춥더라. 그래서 새벽에 에어컨을 껐다. 이불을 덮고 있자니 더워서 걷어 찼다. 더워서 다시 에어컨 켰다가, 추워서 끄고 이불 덮었다가, 더워서 켰... 대환장 파티다.

 

 

호텔 체크 아웃은 정오, 시엠립으로 넘어가는 버스는 열두 시 45분. 뚜얼 슬랭 추모 박물관에 갔다 와서 샤워하고 체크 아웃해도 충분할 것 같다. 조식이 포함된 상품이니까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 크으~ 아무도 없을 때 잽싸게 한 번 적셔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한들... 》

 

 

12층에 있는 식당에 가니 한국어가 들린다. 호객용(?) 한국어가 아니라 진짜 한국어다. "가라~ 가라~" "잇싸바라! (기다려라!) 여 아페 마란다이가. (지금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 "근데 여어↗ 꽁짜가? (그런데 여기 무료냐?)" "모올~래↘ 돈 내라 할라? (모르겠어. 돈 내려고 하려나?)" 캄보디아의 수도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ㅋㅋㅋ

방 번호를 말해주고 접시 하나 집어든 채 음식을 고르기 시작했다. 종류가 많지 않지만 먹어본 것들은 죄~ 다 맛있었다. 베이컨은 조금 더 익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짜게 먹는 내 입에 좀 짰으니까 건강하게 드시는 분들은 소금에 절인 고기를 먹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이슬란드에서 먹었던 인생 베이컨이 그리워졌다.

 

 

 

창 밖을 보니 바이크 떼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켜졌는데도 보행자를 신경쓰지 않고 마구 지나간다. 얼마 전에 바뀐 우회전 관련 도로교통법에 분노하는 이들이 환장하고 좋아할 환경이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길을 건넌다. 무질서 속에도 나름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저 활발함 속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접시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찔끔 먹고 입을 닦으며 마무리 지었다.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며 이 정도면 뽕 뽑았다 싶으려면 최소한 너댓 번은 더 퍼담아야 했는데, 아무도 안 보는 걸 알면서도 유명 연예인이라도 된 양 눈치를 봤다.

커피라도 일 잔 하고 싶었지만 건방진 까만 콩의 이뇨 작용이 두려워 참았다. 방에 들리지 않은 채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걸어서 16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오더라. 동네 분위기도 느껴볼 겸 천천히 걸어서 가기로 했다. 땀이 날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녀와서 샤워할 수 있는 시간은 될 거라 판단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걸었더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담벼락 위에 철조망이 둘러쳐진, 네모 반듯한 건물을 보자마자 저거구나 싶더라. 하지만 건물 입구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후문은 아니고, 측문? 옆 쪽에 난 문은 이렇게 닫힌 상태였다. 여기에서 1~2분 정도만 더 걸으면 정문이 나온다. 나올 때 쯤에는 단체 관람객을 태우고 온 버스가 문을 가리고 있었다.

 

 

 

여기가 정문. 구글 지도에서는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이라 나오고 박물관 측에서 배포하는 한글 리플릿에는 '뚜얼 슬랭 추모 박물관'이라 되어 있다. 박물관의 성격을 나타내는 데에는 대학살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충을 불러보자.

 

킬링 필드는 디트 프란이라는 사진 작가가 캄보디아에서 탈출하여 태국으로 향하다가 길가에 버려진 시체와 유골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하며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후 캄보디아의 폴 포트(찢어죽일 7H AH 77I) 정권이 행한 자국민 학살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고요. 제국주의 일본에 점령 당하지만 연합국의 승리로 독립 당합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자연~ 스럽게 캄보디아를 다시 집어 삼켰고요. 1953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독립하게 됩니다. 이후 캄보디아는 미국에 붙었다, 중국에 붙었다, 이○○ 당적 바꾸듯 여기저기 줄을 옮겨 서다 결국 양 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고 맙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캄보디아 동부 지역을 이용해 식량을 수송한다거나 게릴라 전을 펼치고는 했는데 이는 미국의 눈앳가시였던지라 보급로 차단을 이유로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미국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안 좋아졌고 이는 미국 딱가리 짓을 하던 론 놀 정권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서 결국 반미, 공산주의를 앞세운 폴 포트가 집권합니다.

폴 포트는 모두가 평등한 농업 국가를 만들겠다며 수도 프놈펜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내 시골에 살게 했습니다. 미군의 폭격이 있을 거라며, 니들 다 죽는다고, 짐이고 나발이고 다 놓고 몸만 나가라고 협박했어요. 그 와중에 영어를 할 수 있다거나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은 미국에 붙어먹어 나라를 팔았다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싹 다 죽여버렸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짓을 저질렀어요. 전 국민의 헤어 스타일을 하나로 통일한 건 가벼운 또라이 짓에 속할 정도입니다.

이 때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 나갔는데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난 게 지식층이었던지라 국가적인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배운 놈들이 덜 배운 사람들 뒤통수 치며 제 배때기 채우는 건 언제, 어느 때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제 정신 박힌 사람들이 자정 작용을 해야 하는데 폴 포트 정권은 아예 싹 다 죽여버렸으니까요.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하는 동안 앙코르 와트와 그 일대의 유적 복원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복원과 관련된 자료가 굉장히 많이 쌓였는데 그걸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복원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요.

아무튼, 폴 포트는 뒈지는 순간까지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잘못한 게 없다며 개소리를 해댔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심장 마비로 죽었기 때문에 독살설, 암살설, 별에 별 설이 다 돕니다. 아무튼, 죽고 나서는 타이어 등의 쓰레기와 함께 불에 태워졌습니다. 전○○도 그렇고, 저런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뒈져야 하는데, 저지른 짓에 비하면 너무 곱게 갔다고 생각합니다.

 

 

https://namu.wiki/w/%ED%82%AC%EB%A7%81%ED%95%84%EB%93%9C

↑ 킬링 필드 - 나무 위키 - 폴 포트 ↓

https://namu.wiki/w/%ED%8F%B4%20%ED%8F%AC%ED%8A%B8

 

 

입구에서 10달러를 내면 종이로 된 티켓을 준다. 10달러는 입장료와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된 비용. 가이드 북에는 입장료 8달러에 오디오 가이드가 3달러라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디오 가이드에는 조악한 헤드폰을 연결할 수 있었는데 스펀지가 온전히 붙어 있었다. 뭐, 남들 귓구멍에 들어갔다 나온 이어폰을 쓰는 쪽이 더 찝찝하긴 한데, 이 날씨에 스펀지 헤드폰이라니...

 

 

 

요즘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는 GPS를 활용해서 자동으로 안내가 나오던데 그런 최첨단 기술과는 전~ 혀 관계가 없다. 번호를 눌러 음성 안내를 듣는 시스템이다. 3선에 성공한 이장님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쇠로 된 침대 프레임과 족쇄, 그리고 실제 사람이 고문 당하던 사진이 붙어 있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사진에 붙은 영어 설명을 굳이 읽고 싶지 않고, 해당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싶지 않다. 그냥, 아... 아... 탄식 밖에...

 

 

 

 

원래는 학교 건물이었단다. 그러고보니 전형적인 학교 스타일이다. 중앙 정원처럼 생긴 운동장이 작긴 하지만, 학교로 운영되었다면 쉬는 시간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잠깐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장소에 소름 끼치는 역사를 새겨버렸다.

 

 

 

 

 

《 중앙 정원이 있는 예쁜 학교였을텐데... 여기서 죽어나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 》

 

 

《 코로나의 흔적. 20년쯤 지나면 3~4년 동안 괴로웠던 코로나 시국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등 뒤로 양 손을 포박한 뒤 저 위의 고리에 끈을 끼워 거기 매달았단다. 아래에 있는 항아리에는 물이 담겨 있는데 매달린 사람들이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으면서 분뇨를 쏟아내 그게 고스란히 섞였단다. 매단 사람이 기절하면, 그 똥물에 처박았단다. 죽으면 그대로 던져 버리고, 깨어나면 또 매달았단다. 진짜... 사람 AH 77I인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자기가 매달렸을테니 정의 운운할 일인가 싶다. 야만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하는 건지... )

 

 

 

 

 

 

 

 

 

 

 

참혹하다... 지금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지, 불과 몇십 년 전에 저기에 갇혀 괴로워했던 이들이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참혹하다... 참혹하다...

 

 

《 캄보디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대 자동차 》

 

《 참새를 볼 수 있음 시골이랬지 》

 

 

 

굉장히 유명한 사진이다. 아기를 안은 엄마의 사진인데, 그냥 '앉아!' 해서 찍은 게 아니라 자세를 고정하는 장치에 고정 시켜놓고 찍은 거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들으려면 가이드를 동반하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써야 한다. 다른 나라의 목소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녹음된 목소리는 그저 담담한 수준에서 약~ 간, 아주 약~ 간 화가 난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더 슬펐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했고, 하고, 할 사람들이 모인 조직 역시 실수를 한다. 실수를 했으면 그걸 수습하고 만회해야 한다. 그런 당연함이 작동하지 않고 실수가 실수를 넘어 악의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 실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로 덮기에 급급하다 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다. 최근 전두환의 손자가 이슈인데, 따지고 보면 우리도 그 벌레만도 못한 AH 77I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도 물고 빠는 ×××들도 있으니까. 폴 포트를 응징하지 못한 캄보디아를 욕할 일이 아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