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  행 』/『 해외여행 』 2023, 캄보디아

2023 캄보디아 여행 ⑩ 바이욘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3. 19.
반응형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더위를 예상하고 왔는데 의외로 버틸만 했다. 한국의 여름과 그닥 다르지 않아서 더위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에어컨이 있는 장소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새벽에 추워서 깼다. 이불을 칭칭 감고 자면서도 에어컨을 끄지 않았다. (복선)   일곱 시가 넘어 샤워를 마친 뒤 대충 주워 입고 침대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가이드로부터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카카오 톡 프로필에 사진이 있어서 얼굴을 알고 있었고 가이드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쉽게 알아봤다.

툭툭에 올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호구 조사에 들어갔다. 서른 여덟 살이란다. 응? 그렇게까지 안 봤는데? 어찌 되었든, 그동안 안내했던 한국인들이 수도 없는데다 별에 별 진상도 다 겪어 봤을 터. 아니나 다를까 말빨이 엄청나다. ㅋㅋㅋ   나는 마흔넷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안 보인단다. 진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건 전 세계 공통의 서비스 멘트고만.
가이드 님도 훨씬 젊어 보인다고 답례를 하니 뭐라 부르면 되겠냐고 묻는다. 한국 이름이 어려울테니까 그냥 '진(아이고~ 혹시나 전생에 죄가 많아 길을 잘못든 탓에 이런 험한 글을 보셨을 BTS 팬님들, 절대 불손한 의도가 아닙니다. 그런 거...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거 아닙니다. ㄷㄷㄷ)'이라 부르라 했더니 "오빠라 할까요?" 하더니만 그 다음부터는 줄곧 오빠라고 불렀다. ㅋㅋㅋ

 

 

 

가이드의 남편이 내 카톡 프로필을 보고 여자라 했단다. 편견없는 캄보디아인. ㅋㅋㅋ

 

 

일단 티켓 오피스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기저기 창구 앞에 줄을 서는데 그걸 정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서 절묘하게 빈 창구 앞으로 데리고 가더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일주일 중 3일 동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3일권62달러.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달러였다는데, 많이 올랐다.

캄보디아는 사실 상 앙코르 와트가 먹여 살리고 있는 나라라 봐도 무방한지라 입장 수익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이드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원래의 티켓 오피스는 앙코르 와트 바~ 로 앞에 있었단다. 그 때에는 표에 날짜도 없고 사진도 없어서 관람을 끝낸 사람들에게 티켓을 받아 재활용하는 게 가능했단다. 저녁 무렵에 앙코르 와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사람들에게 표를 달라 해서 다음 날에 그걸 다시 팔아먹는 게 가능했단다. 그렇게 날로 먹는 게 가능하다고 소문이 나니 사람들이 몰려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티켓 오피스 측에서도 금방 알았겠지. 갑자기 입장 수익이 확~ 줄었을테니까. 그래서 티켓에 사진을 붙이게끔 했다지? 문제는, 사진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되돌려 보내는 일이 부지기수(우리나라처럼 금방 사진이 나오는 기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데다, 사진을 붙이네 어쩌네 하면서 시간을 많이 까먹어 입장권을 받을 때까지 엄~ 청 기다려야 했단다. 사람들이 하도 몰려 줄이 길게 늘어서니 어쩔 수 없이 티켓 오피스를 뒤로 잔뜩 물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로지텍 캠을 도입해 즉석에서 사진을 찍은 뒤 인쇄하는 방식이 도입되었고 지금의 위치로 티켓 오피스를 옮겼다고 한다. 자빠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걸어가다 쓰러질 위치로 티켓 오피스가 옮겨진 이야기인데 가이드가 이걸 참 재미있게 전해준다. ㅋㅋㅋ

티켓의 뒤 쪽을 보면 동그라미 안에 1부터 31까지, 숫자가 가장자리를 빙 둘러 쓰여져 있는데 입장하는 날짜에 맞춰 펀치로 구멍을 뚫는다. 그걸로 관람한 날짜를 확인하게 되는 거다. 간단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나 같은 경우는 8, 9, 10일을 연속해서 봤기 때문에 관람권에 나란히 구멍 세 개가 뚫려 있다. 관람권은 회수하지 않기 때문에 가져가게 되는데 여행의 추억을 모아두는 폴더 한 켠에 고이 모셔두었다. 볼 때마다 앙코르 와트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지도 앞에 서서 티켓 오피스가 옮겨온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은 어디를 갈 거라고 브리핑을 받았다. 원래는 앙코르 와트를 먼저 보지만 첫 날은 앙코르 톰을 시작으로 주변을 보고, 다음 날 일출을 시작으로 앙코르 와트를 싸~ 악 둘러보기로 했다. 가이드가 시엠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어렸을 때 앙코르 유적을 놀이터 삼아 마구 뛰어놀았던 얘기부터 시작해서 별에 별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ㅋㅋㅋ

 


 

앙코르 와트 투어는 스몰 투어, 빅 투어로 정형화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코스가 따로 있지 않는 이상 가이드가 안내하는대로 가도 어지간한 코스는 다 볼 수 있다. 다만 톤레삽 호수나 프놈꿀렌 같이 먼 곳에 가려면 툭툭으로는 조금 힘들 수도 있으니 차를 이용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뭐,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했다면 전부 부탁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원래는 7일에 미리 티켓을 구입해서 8일부터 일출 보면서 앙코르 와트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시엠립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표를 사지 못했다. 오전에 티켓을 구입하고 바이욘 사원부터 구경하기로 결정.

앙코르 톰남문을 통해 들어갔는데, 가는 동안에도 니몰(가이드)이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었다. 원래는 앙코르 와트 근처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단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집 앞에 가게를 차려 생활했으니 난잡하기 그지 없었다고. 좀 떨어진 곳에 땅 주고 돈도 조금 줄테니 옮겨 가라는 정부, 그렇게는 못 산다는 사람들, 실갱이 끝에 지금은 거의 다 나가서 빈 집을 철거하고 거기에 나무를 심었단다. 그 나무들이 우기에 물을 흡수해서 유적이 망가지는 걸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뭐, 여전히 안 나가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 화장실에 미리 다녀왔다. 화장실 안팎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

 

 

《 앙코르 톰 남문에 도착. 이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힌두 신화에서는 우유 바다의 중심에 산을 박아 넣고, 그 산을 뱀으로 감싼 뒤, 착한 신과 나쁜 신이 양쪽에서 줄다리기 하듯 서로 밀고 당겨 세상이 탄생했다고 이야기한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각 문의 다리 난간이 바로 그 장면을 표현한 건데, 오른쪽은 착한 신, 왼쪽은 나쁜 신이다. 생긴 것만 딱 봐도 착한 쪽과 나쁜 쪽을 구분할 수 있다. 음... 옳지 않잖아, 이런 거!!! 😩

 

《 착한 신의 맨 앞 부분. 뱀의 머리를 감싸쥔 손이 보인다. 정교하다, 엄청. 》

 

 

《 1,000년 넘게 지난 돌에서 뱀의 비늘을 새긴 게 보일 정도라니... 》

 

 

《 대부분 여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안으로 이동한다. 》

 

 

《 앙코르 톰의 남문이 그나마 복원이 가장 잘 된 장소이다. 프랑스 팀이 복원했단다. 》

 

 

《 이 사면상이 있는 문을 '고프라'라고 부른다. 실제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

 

사진과 영상 기술이 굉장히 좋아졌지만 실제로 보는 것만 못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봤을 때의 그 웅장함은 사진으로는 어떻게 해도 느껴지지 않을 거다. 다녀온 지 꽤 지났는데 저 때의 날씨, 공기, 특유의 향,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생각난다.

1,000년도 더 된 과거에 이렇게 엄청난 걸 만들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 분당 1와~ 를 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와아~

 

 

《 안으로 들어가면 코끼리가 보이고, 그 코끼리의 코 끝에 연꽃이 새겨져 있다. 》

 

 

 

《 나무가 쓰러져서 유적을 파괴하기도 한단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베어낸다. 》

 

 

 

《 나무 뿌리가 돌을 들어버린다. 나무 뿌리 때문에 울퉁불퉁해진 바닥. 》

 

니몰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는 가이드니까 당연히 한국인 단체 또는 개인의 안내가 많았을 거다. 그렇다는 건, 한국인이 떠들어대는 대부분에 익숙해져 있다는 거다. 될 수 있으면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다 알고 먼저 부장님 개그 던져대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 ㅋㅋㅋ   구멍이 숭~ 숭~ 뚫린 돌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이걸 제주도 생각하면서 화산 뭐라뭐라 하는데, 캄보디아에는 화산이 없다면서, 돌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더라. 그동안 아는 척, 재는 척 하는 양반들로부터 같은 얘기를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ㅋ

 

 

 

《 국왕이 신봉하는 종교에 따라 불교로 갔다가, 힌두교로 갔다가. 》

 

왕이 등극하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사원을 건축했단다. 이 많은 돌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미스테리였는데 프놈꿀렌에서 뗏목을 엮어 싣고 오기도 하고, 코끼리가 끌게 해서 가지고 오기도 했다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나 많은 돌을? 하고 의심하던 사람도 프놈꿀렌에 가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단다. 나는 프놈꿀렌에 가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
건축 규모로 볼 때 수천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된 걸로 추정되는데 코끼리 밥 값 때문에 왕국이 급격히 몰락했다는 가설도 있다고 한다. 조선 태종, 세종 때 일본이 바친 코끼리 한 마리 때문에 '쟤, 밥 많이 먹어서 싫어요.'라고 징징거리는 장계가 여러 차례 등장한 걸 보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다.

 

 

 

아무튼, 왕이 믿는 종교에 따라 사원이 지어졌는데, 문제는 사원이 완성되기 전에 왕이 바뀌어버리기도 했다는 거다. 불교를 믿는 왕이 즉위했는데 그 다음 왕은 힌두교를 믿고, 그 다음 왕은 또 불교,... 불교를 믿는 국왕의 지시에 따라 사원을 짓다가 힌두교를 믿는 왕으로 바뀌면 부처상은 죄다 힌두의 신으로 바뀌고, 벽에 새긴 부조도 다시 파서 모양을 바꿨다 한다.

위 사진의 누운 부처도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어 복원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라고.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하던 당시, 사원의 복원에 나름 열심이었고 관련 자료를 많이 남겼지만 폴 포트와 크메르 루즈가 싹 다 태워버렸단다. 그래서 복원과 관련된 자료가 아예 없어 함부로 복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한다. 게다가 급하게 복원한답시고 콘크리트와 아세톤을 써서 오히려 망가진 경우도 숫하다고. 우리도 익산의 미륵사지에 가면 일제가 성급하게 콘크리트를 때려 부어 오히려 망가뜨린 탑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사료에 따른 복원을 시도하여 18년 만에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미륵사지 서탑).

 

 

 

《 사원과 관련된 돌인 건 분명한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이렇게 해놓은 게 부지기수. 》

 

 

 

 

《 새겨놓은 걸 보면 그저 감탄 밖에 안 나온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돌에다... 그것도 엄청난 양을... 》

 

 

《 복원 불가능한 곳은 이렇게 다른 돌로 채워놨다. 자료가 없어 복원이 불가능한 부분이란다. 》

 

 

 

《 가파른 계단, 사면상이 힌두교 사원의 특징이란다. 》

 

 

 

 

 

《 여기도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복원하지 못해 그저 쌓아놓기만 한 것. 》

 

 

《 미처 완성하지 못한 부분도 보인다. 》

하도 사원을 지어대니 전 왕이 살아있을 때 짓던 사원은 왕이 바뀌면 그대로 방치했단다. 그래서 완성되지 않은 사원도 꽤 된다고.

 

 

『 하부는 지옥, 중부는 인간 세계, 상부는 천계인데 새기기 쉬우니 아래만 조각된 게 은근히 많다더라. 』

 

 

 

《 탑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이렇게 보인다. 》

 

 

《 탑 아래에는 여성 성기와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와 링가가 있었다 한다. 》

 

요니는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고, 링가는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한단다. 요니에 링가가 결합된 형태로 만드는데 생명력을 숭배하고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외부의 침략 세력이 정기 말살 차원에서 이를 다 훼손했고, 국교가 불교로 바뀌면 링가를 제거하고 요니는 반석으로 다듬어 그 위에 불상을 두었다고 한다. 제대로 남아있는 요니는 물이 흘러내리게끔 만든 구조를 볼 수 있는데 물을 부어 흘러내린 걸 마시거나 목욕할 때 사용하면 딸을 낳을 수 있단다. 링가를 만지면 아들을 낳게 되고.

캄보디아는 여아 선호가 강한 국가란다. 결혼할 때 남자는 지참금을 들고 여자의 집으로 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남자 애는 키워봐야 돈은 돈대로 들고 결국 남의 집에 노동력이나 제공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강하단다. 그래서 첫 아이는 딸을 선호한다고.

 

 

《 원래는 나무로 된 천장이 있었다고 한다. 나무로 만든 게 없어져 지금의 형태만 남은 것. 》

우리나라의 경복궁도 지금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통로가 휑~ 하니 비어 있지만 실은 전부 지붕이 있는 복도 형태였다고 한다. 일제가 다른 궁궐을 보수할 때마다 뜯어내는 바람에 지붕과 통로가 다 없어졌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임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뒤에서 우산 받쳐든 신하가 따라갔다 생각하는 것.

 

 

《 가부좌를 튼 부처가 새겨져 있던 자리인데 힌두 사원으로 바뀌면서 다 파냈다고 한다. 》

 

 

 

《 이렇게 물이 흐르게끔 만든 게 전형적인 요니의 모습이다. 》

 

 

《 불교의 부처는 가부좌를 튼 반면, 힌두의 수도승은 다리를 X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다 한다. 》

 

 

 

 

《 요니에 박혀 있는 링가. 남아있는 링가가 거의 없어서 실물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

 

 

《 지금은 휑~ 한 저 부분도 예전에는 나무로 된 문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문 고정용 구멍이 남아 있다. 》

 

 

 

《 원숭이 한 마리가 석상에 감겨 있던 끈 같은 걸 낚아채 도망갔다. ㅋㅋㅋ 》

 

 

 

《 이렇게 탑 아래에 석상을 모셔둔다. 》

 

 

《 광배(석상 뒤 아우라)의 모양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 걸치고 있던 것을 원숭이에게 강탈 당했다.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