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채우고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어찌나 피곤했는지 혀를 씹는 바람에 아파서 깼다. 적당히 피곤하면 자면서 움찔거리거나 움! 왬! 하고 알 수 없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거나 하고, 거기서 더 피곤하면 침을 질질 흘리고 잔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혀를 씹어 버리고. 즐겁게 놀고 있긴 하지만 몸뚱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다.
꽤 잔 줄 알았는데 달랑 한 시간이 지나있을 뿐이었다. 마저(?) 빈둥거리다가 약속한 시간이 되어 모자를 눌러 쓰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갔던 '따 프롬'이 자야바르만 7세가 어미니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지은 사원이었다면, 오후에 갈 쁘리아 칸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사원이다. 그래서인지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조차도 확실히 선 굵고 묵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건기라서 흙먼지가 일어나는 길이지만, 우기에는 진흙탕이 된다. 》
《 아버지를 위한 사원이라 들어서 그런건지 입구에서부터 남자다움이 느껴진다. 》
《 예산의 한계 때문인지 앙코르 톰 남문처럼 복원하지 못한 상태였다. 》
내가 어렸을 때에는 석굴암에 가면 돌로 된 부처상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두꺼운 유리 보호벽 안에 들어가 있고. 보존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캄보디아의 유적들을 볼 때에는 석굴암과 반대의 상황 때문에 걱정이 됐다.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싶은 거다. 아무리 돌이라지만 바람과 비에 깎여 나갈텐데, 보존 처리를 하지 않고 이대로 자연에 두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됐다.
《 운이 좋은 건지 방문하는 장소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
《 악한 신이 잡아 당기는 쪽도 손상이 심하다. 》
《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루다 상을 볼 수 있다. 》
《 해자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유적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데 물이 말라 점점 기운다고 한다. 》
듣자마자 써야 했는데 시간이 흘러 다 까먹었다. 기억나는대로 끄적거려 보자면, 앙코르 유적을 지을 때 맨 아래에는 모래, 그 위에 진흙인가 자갈, 뭐 그런 순으로 지반을 다졌다고 한다. 모래는 물이 빠지면 푸석푸석해지면서 단단함을 잃으니까 주변 해자를 통해 항상 젖어있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해자의 물이 빠지거나 마르면서 모래가 점점 응집력을 잃어 지반이 약해지고 그 때문에 유적이 점점 기운단다. 아닌게 아니라 방문했던 대부분의 유적의 바깥쪽 담장이 죄다 기운 상태였다. 뒤늦게 해자의 중요함을 깨달아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고 물을 채웠다지만 기운 것을 다시 세우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 정문으로 들어서면 저~ 멀리까지 一자로 쭉! 뻗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볼 수 있다. 》
지금 봐도 그저 와~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예전처럼 나무로 된 문이 겹겹이 닫혀 있다가 탕! 탕! 하면서 열리고, 사방에서 금과 보석이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면 그 위세가 어떠했을지...
《 무너진 채 방치된 석재. 복구에 필요한 자료가 전혀 없는데다 돈과 시간이 드니... 》
《 불상의 기단으로 만들어졌다가 힌두 사원으로 성격이 변하면서 요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
《 저 요니에 박혀 있었을 석불은 부서진 상태로 일부가 버려져 있다. 》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불교 사원이 힌두교 사원으로 성격이 달라지면서 원형이 훼손된 경우도 있고, 폴 포트 정권이 의도적으로 망가뜨린 부분도 있으며, 내전(베트남 군 vs 크메르 루주) 때 손상된 부분도 있다. 복원과 관련된 자료들이 폴 포트 집권 당시 불에 타 없어져버려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참...
《 태국의 군인이 전쟁 중에 들러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 》
《 원형, 육각 등이 의미하는 게 다르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 까먹었다. 😩 》
《 도굴꾼들이 팔아넘길 요량으로 얼굴 부분만 떼어갔다고 한다. 》
도굴꾼과 사기꾼은 자비 없이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형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 원래 불교 사원으로 건축되었음을 알리는 작은 불탑. 》
역시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왕에게 언니(또는 동생)가 시집을 갔단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왕비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전쟁터로 향했고 자신의 빈 자리를 동생(또는 언니)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왕비 자리를 놓고 서로 양보를 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 들을 때에는 오~ 하고 감탄하며 들었지만 아침에 뭐 먹었나조차 까먹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2주 전에 들은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다. 😭
캄보디아는 첫째로 딸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기도를 올리면 딸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인 니몰도 여기에서 기도를 올려 딸을 얻었다고.
《 한 쪽 구석에, 보이지 않게 언니(인지 동생인지)가 따로 자리하고 있다. 디테일하다. 》
과거의 인류가 현대의 인류를 능가하는 엄청난 기술력을 쌓았지만 핵 같은 대량 살상 무기 때문에 그 흔적이 사라져버렸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무 대륙 같은 이야기도 나오는 거고, 하늘로 솟은 듯 갑자기 사라져버린 잉카나 아즈텍 문명 이야기도 거기에 속한다는 거지. 오파츠도 그걸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하고. 뭐,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앙코르 유적을 보다 보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모든 시도들이 디테일하다.
《 저 2층 건물을 보고 설명을 들으며 와~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올라가보자고 한다. 응? 》
《 이렇게 올라가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죄다 막아놨을 건데. 》
《 흙에 파묻혀 있던 걸 파내어 발견했다 한다. 얼마나 깊이 묻혀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
《 바로 앞이 인공 호수. 툭툭을 타고 저~ 쪽까지 가서 니악 뽀안으로 이동한다. 》
《 원래 숲이 있던 자리에 물을 채운 거라서 수생 식물이 아닌 나무가 죽고 나서 저렇게 됐다고 한다. 》
《 혹시라도 까불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조상님 뵙고 올 것 같은 개미가 잔뜩... 》
《 여기도 배터리 짊어지고 다니다가 전기로 지져서 고기 잡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
아, 그냥 지나갈 뻔 했는데... 캄보디아도 왕이 바뀔 때마다 신에게 고해야 하는데 그 때 필요한 성물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신성한 칼이라고. 원래는 쁘레아 칸에 그 칼을 모셔 놓고 있다가 왕이 바뀌면 가져가서 신에게 고할 때 쓰고 다시 돌려놨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통에 태국이 빼앗아 갔단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단다.
우리가 과거의 침략 때문에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캄보디아 사람들도 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식민 지배를 한 것은 프랑스이고, 쳐들어온 건 베트남인데, 그 두 나라보다 태국을 더 싫어했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태국 친구가 선물해준 태국 대표팀 유니폼과 부리람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챙겨갈지 고민했었는데, 큰 일 날 뻔 했다. 😑
아무튼, 그렇게 빼앗아 간 신성한 칼이 지금은 태국에서 신성한 제사 같은 게 있을 때 실제로 쓰인단다. 정작 캄보디아는 모조품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하고. 캄보디아 사람인 니몰에게 들은 이야기니까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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