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병원에 다녀온 건 2022년을 며칠 남기지 않은 12월 말. 당연히 승진할 줄 알았는데 미끄러진 충격이 커서, 상실감이랄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아 병원에 다녀왔더랬다. 다행히 병원에 다녀온 후 금방 상태가 좋아져서 그 때 받은 약이 꽤 남았다. 그 약을 먹으며 버텨보자고 생각했다가, 그냥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정신과라고 하면 말 그대로 미친 ×만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언덕 위 하얀집이라 놀리며 사이코 패스(라는 말도 몰랐던 시기지만)들이나 가는 곳이라 여겼더랬다. 그러다가 ○○에 있을 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죽이던가 죽던가 둘 중에 하나가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다.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떠들었더니 쌓인 게 꽤 풀리더라. 낳아준 엄마조차도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라며 이해하려 들지 않는데 일면식도 없던 의사 선생님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게 참 고마웠다.
일본에서 살 때 휴직을 계속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우울함이 극에 달해서 정신과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했더랬다. 우울증이 워낙 흔한 병이라, 마음의 감기라 부르며 아무렇지 않게 여기더라. 그래서 정신과에 가려면 최소한 3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결국 가지 못하고 혼자 방에서 질질 짜고 술 처마시다 돌아왔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갑자기 기분이 훅~ 가라앉는다.
아무튼, 집 근처에 있는 병원 중 나름 깔끔해보이는 곳에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쑥 찾아가 진료 받겠다고 하면 바로 되나 싶어 샤워하고 나온 뒤 전화를 걸어봤다. 다행히 취소한 환자가 있어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대충 주워 입고 지하철을 이용해 병원으로 향했다.
○○의 병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밭이었는데 여기는 어린이나 아동 학부모 환자가 많은지 놀이방 같은 게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설문 조사를 마친 후 얼마 기다리지 않고 상담을 받았다.
최근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 걸 이야기했다. 질질 짤까봐 걱정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얘기하는 과정에서 가정 환경을 물어보기에 이야기했더니 나중에 불행한 가정 환경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 남들이 보기에는 마냥 불행한 가정이겠지.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서 그런가 나쁜 기억이 많이 지워져 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은 가정이었다 싶은데...
아무튼,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지면 안 되지 않냐면서,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얘기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옳지 않다 생각하는 사람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ㅈㅈㄷㅈ 같은 개자식을 무시하고 사는 거다.
싫은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했지만 아무리 여유가 많이 생겨도 저 따위 것들이 개소리하고 말 같잖은 짓거리하는 걸 두고 볼 생각은 없다.
뭔 테스트를 한다면서 왼쪽 발목과 양쪽 손목에 클립을 끼우고 기계를 돌리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난다. 그렇게 멍 때리고 앉아 있는데 테스트가 종료되었단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들이 마셔라, 내뱉어라만 열 번 가까이 시키고는 테스트가 끝났다. 이런 걸로 무슨 테스트가 되나 싶었는데, 결과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더라.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꽤 높단다. 가운데 위치하고 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녹색에 머물러 있어야 정상이란다. 나는 노란색에 가 있으니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문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이건 아예 빨간 색에 멈춰 있다. 거의 맨 끝. 여러 지표가 모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다.
일단 2주 동안 먹을 약을 처방 받았다. 술 줄이고 운동할 것을 권유 받았고. 회사에서 저 염병할 꼰대 AH 77I 를 보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사를 쉬고 싶은데 그러려면 진단서가 필요하다 했더니 심리 테스트를 받아야 한단다. 알겠다고 했다.
잠시 후 심리 테스트 받겠냐고 물어보는데 비용이 43만 원이란다. 너무 비싸다. 게다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데 시간도 문제다. 출근해야 하는데. 그래서 다음 진료일만 미리 예약을 하고 심리 테스트는 뒤로 미뤘다.
몇 시간 뒤에 출근할 생각을 하니, 출근해서 저 개만도 못한 AH 77I 를 봐야 한다 생각하니, 숨이 턱! 턱! 막혀온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안 갈 수는 없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자. 후아...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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