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라는 절박함이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찾아오는, 소위 '러너스 하이'라는 것을 느끼고 위함이든,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42.195㎞를 세 시간 안 쪽에 주파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어디에서 주워 들었는데 두 시간 넘게 시속 19㎞로 달려야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시속 9㎞로 뛰기 시작한 지 3분 만에 그만 멈출까 말까 고민하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이 내는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니까, 두 시간 반만에 완주하던 사람이 세 시간 걸렸다고 비난할 맘은 단 1g도 없다.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런데, 달리기는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마라톤 풀 코스를 세 시간이나 걸렸다고 욕하고 깔보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마라토너가 욕 먹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F1 레이싱을 본 사람은 알텐데, 타이어 마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달리고 나면 피트 인 해서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 이 때 타이어 네 개를 빼내고 새 타이어를 넣은 뒤 고정하는 시간이 10초도 안 걸린다. 10초? 5초도 안 걸리는 기분이다. 동네 정비 업소에서 가서 TV로 본 타이어 교체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왜 그러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제 정신이라 생각할까?
욕을 하고, 욕을 먹는 건,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때 힘이 실린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누군가를 씹는다면 고스란히 되돌아온다는 것조차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어울려 사는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다.
회사에서는 나를 부적응자처럼, 잔잔한 물결이 이는 호수에 던져지는 돌처럼 취급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악취나는 썩은 것들이라 생각한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했다는 이유로 나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면 그냥 나쁜 놈 소리를 듣는 게 편하다. 내가 어떻게 살더라도 욕할 것들은 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엄청난 사람도 욕 먹고 사는 세상이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다. 어디라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만뒀다. 하루종일 방에서 빈둥거리다 결국 술을 마셨다. 끊을 생각은 없지만 줄여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데, 9월부터 좀 덜 마시자고 마음 먹었는데 불과 4일 만에 마셔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들고 온 것은 아니라는 것.
일본에 있을 때에는 하이볼을 그닥 즐기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한국에 돌아와서 소주 마신 뒤 2차 가서 하이볼을 마시게 된다. 레시피라고 해봐야 위스키에 탄산수 타는 것(토닉 워터를 타는 한국식 하이볼은 달아서 싫어한다)이 전부니까 재료도 간단한데 짐빔이나 산토리 위스키를 사는 게 쉽지 않다. 마트에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도수 센 술에 쥐약이라서 쉽사리 손이 안 가는 거다.
그런데 회사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카치 블루가 위스키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세금이 면제되는 술을 안 사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서 거의 매년 꼬박꼬박 사지만 죄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줬지, 단. 한. 번. 도. 내 입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 지난 해와 이번 해에도 당연히 언젠가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생각으로 스카치 블루를 샀는데 이게 위스키라니.
당장 편의점에 가서 얼음 컵과 탄산수를 사들고 왔다. 보통 1:4 내지는 1:3 비율로 타면 된다기에 1:4로 탔더니 딱이다. 그렇게 유튜브 보면서 야금야금 두 잔 반 정도를 마셨다. 맥주 마실 때에는 한 번에 네 캔에서 여덟 캔 정도를 마시니까 다음 날 숙취가 느껴지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없고 개운하더라. 단,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한 시간 운동하고 들어와서 일기를 쓴다. 이제 슬슬 배를 채워야 하는데 마땅히 먹을만 한 게 없으니 라면이나 끓일까 싶다. 배 채우고, 우체국 가서 택배 보내고, 잠시 앉아서 멍 때리다... 아! 도서관 다녀와야 하는고나. 음... 오후에 꽤 바쁜데 이러고 있고만. 얼른 밥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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