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일요일이니까.
예전 일요일은 뭔가, 일요일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아침 일찍 문 열던 가게도 셔터가 내려져 있고, 길에 보이는 사람도 없고, 마치 지금의 유럽처럼.
요즘은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많고 일요일에도 아침 일찍 문 여는 가게가 많지만 예전에는 남들 쉴 때 쉰다는 분위기였다. 이 동네는, 실로 오랜만에 일요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월세가 비싸다.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집을 얻었던 게 ㄱㅈ 살 때와 ㅍㅌ 살 때였다. 두 곳 모두 전세 1억 짜리였다. 당연히 내 돈은 아니었고 은행에서 빌려서 집을 얻었더랬다. 요즘은 전세 사기가 워낙 심하니 엄두를 못 내겠다. 실제로 저 두 곳에서도 이사 나올 때 쉽지 않았다. 돈이 없다며,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는 개소리를 했다. 내 돈 내놓으라는데 못 주겠다고 배짱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전세 얻을 생각조차 안 한다.
지금 내고 있는 월세가 전세로는 어떤 수준인가 싶어 알아봤는데... 나, 엄청나게 비싼 곳에 살고 있었네. 지금 내는 월세 수준이 전세 1억을 넘는다. 지방 of 지방에서 말이지.
아무튼.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아무 것도 안 했다.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로 무기력증이 있는데 그게 팍! 터져서 아무 의욕도 안 생긴다. 그래서 가뜩이나 좁은 집이 개판이다. 이사올 때 짐 늘리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해놓고, 여기 와서 산 옷만 수십 벌이다. 정작 옷 잘 입고 다닌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말이다.
거실이 너무 난장판이라서, 접이식 플라스틱 상자를 또 샀다. 이미 네 개를 가지고 있지만 부족하다. 지르고 나서 보니 네일베 페이에 충전한 돈이 60만 원 정도 밖에 안 남았다. 얼마 전에 100만 원 충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100만 원 더 넣었다. 당연히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고. 뭐, 어차피 쓸 돈이니까 괜찮다. 그래도 안 나가던 월세가 나가면서 돈이 안 모일 줄 알았는데 마이너스는 안 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여행 통장에 100만 원이 쌓였고, 지름 통장에도 100만 원이 쌓였다. 지름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타이어 사야 할 것 같고, 여행 통장에 있는 돈은 내년에 몽골 여행 때 쓸 생각하고 고이 모셔놔야겠다.
어제 퇴근할 때 보니 세 면의 주차 공간 중 명당이 비어 있기에 그 쪽으로 차도 옮길 겸, 세차하러 다녀오기로 했다. 손전화도 가져가지 않은 채 아래로 내려갔더니 명당에 차가 들어와 있다. 젠장.
일단 세차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출발. 무터치 자동 세차장으로 향했다. 간발의 차이로 빈 자리를 놓쳐서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손전화를 두고 가서 할 일도 없고, 심심했다.
세차를 마치고 돌아와 주차를 하고, 드론 날리러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 뒀다. 그리고 얼음 컵에 산토리 위스키 한 잔 부어넣고 탄산수 다섯 잔 부어서 하이볼을 만들었다. 말이 좋아 하이볼이지, 이 정도면 위스키 맛 물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이어트를 하겠답시고 일주일 내내 밥을 한 번도 안 먹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안 먹었다. 샐러드 먹고,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퇴근해서 운동하고, 집에 와서 씻고 물만 마시고. 진짜 그렇게 살았다. 이틀 만에 6㎏가 빠졌는데 치킨에 맥주 먹었더니 2㎏가 바로 불었다.
어제는 주말이라는 이유로 운동을 가지 않았고, 오늘도 안 갔다. 대신 아침 일찍 슈퍼에 가서 장을 봤다. 당근, 양파, 오이 등을 사들고 와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추석이랍시고 시에서 만 원 짜리 상품권 두 장 줬는데 18,100원 쓰고 1,900원 남겨왔다. 오면서 편의점에서 얼음 컵 두 개 사니까 1,800원 나가서 딱 100원 남았다. 계획하고 써도 이렇게는 못 쓰겠다 싶어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된장찌개를 끓여서 햇반 세 개와 함께 먹어 치웠다(한 번에 다 먹은 건 아니고 아침에 두 개, 점심으로 한 개 먹었다. -ㅅ-). 곤약 밥이라 칼로리가 낮은 거라고 해서 죄책감이 조금 덜했다. 모처럼 짠 기가 들어가니 행복해진다. 하지만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순간 불행해지겠지. 내일은 운동하러 가야겠다.
자고 일어나 어수선한 침대를 보고 있자니 저기를 창고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을 지지하는 플라스틱 다리가 여러 개 부러진 상태라서 부실한 침대다.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파 바닥에 토퍼를 깔고 잔 지 꽤 됐다. 덕분에 침대에는 안 쓰는 물건들을 던져 놓는 공간이 되어버렸는데, 자다 깨서 지른 접이식 플라스틱 상자가 오면 거기에 짐을 넣어 침대에 올려둬야겠다고 생각했다.
40개에 만 원도 안 하기에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샀던 변기 세정제는 두 알을 넣어도 일주일을 못 간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공감했다. 하나에 만 원 가까이 하는 비싼 세정제를 두 개나 샀지만 저 망할 40알을 다 써버리기 전에는 못 쓰겠다. 이렇게, 곧 쓴다는 생각으로 쌓아두는 물건이 꽤 많아졌다. 슬슬 이사갈 생각도 해야 하니 정리를 좀 해야겠다.
이번에 근무지를 옮길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옮기게 되면 좀 더 사람 같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내일부터 또 근무. 한 사이클만 버티면 된다. 다음 달 초에 병원에 가서 진단서 받아온 뒤 그 날 사무실에 들어가 휴가 올리고 나올 생각이다. 아, 그 전에. 낮 근무 마치고 퇴근하면 1층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해병대 돌격 머리로 밀어달라고 할 생각이다. 지난 번에는 어중간한 스포츠 머리로 깎아줬었다. 이번에는 손전화를 들고 가서 사진 보여주고 이대로 밀어달라고 해야겠다. 어차피 2주 지나면 어중간하게 길어서 한 번 밀어야 할테니 회사에서 말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내일은 후배 동료가 쉬는 날이라, 염병할 개자식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수인계 안 받을테니까 그냥 가라고 할 생각인데, 만약 질알하면 싸울 생각이다. 전투 모드로 출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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