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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3년 11월 01일 수요일 맑음 (까닭 없이 힘든 날)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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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디 뻔한,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벌써 11월이다. 매년 11월 1일이 되면 똑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곧 생일이고나.' 정도?

 


 

무력감이 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요즘이다. 억지로 힘을 내보려고 하는데, 쥐어짜는 건 한계가 있다. 스스로 즐겁지 않으니까 뭘 해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억지로 힘내지 말자고, 그냥 널부러져 있자고 타협하지만, 정작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스스로가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지난 주에 이것저것 잔~ 뜩 질러버린 덕분에, 화요일에 택배 폭탄을 맞았다. 세 번에 나누어 집으로 옮겼고, 거실은 택배 상자로 가득 찼다.

 

내 앞으로 온 게 맞는 지 확인을 하고, 내용물을 확인한 뒤 상자를 뜯고, 상자를 펼쳐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 준비를 하고,... 몇 번 반복하다 지쳐버렸다. 방으로 들어와 퍼져 있다가 다시 시작. 그렇게 상자를 다 뜯은 후 또 퍼졌다. 예전 같으면 한 번에 끝냈을 일인데, 이제는 10분 남짓을 움직이면 30분 가까이 쉬어야 한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 쥐어짜듯이 힘을 내야 한다.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정신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고나 싶더라.

 

그렇게 거실을 들락거리기를 여러 차례. 택배 상자를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에 두고 왔다. 그 잠깐의 외출도 힘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른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항상 하는 생각, 콩이 바닥에 잔~ 뜩 쏟아졌다는 생각으로 버틴다. 한 알, 한 알, 줍다보면 언젠가는 다 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버틴다.

 

어렵게 정리를 마쳤다. 예전 같으면 한 시간도 안 걸렸을텐데, 세 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래도, 해놓고 나니 뭔가 뿌듯하다. 이렇게 작은 일에 성취감을 느낀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하이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위스키 맛 물을 세 잔 마신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여러 차례 깼다. 억지로 다시 참을 청했고, 그렇게 자고 일어났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운동을 가야 하는데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 그냥 아침 밥을 먹고 다시 잤다. 앱을 통해 얼마나 잤는지 확인해보니 거의 열두 시간 가까이를 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중간에 수도 없이 깼고. 그래도 이렇게나 잤다니, 내 맘이 많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발히 움직여야 할 시간을 잠으로 대신한 거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간 맞춰 씻고 돈 벌러 나갔다. 달이 바뀌는 첫 날이니까 틀림없이 엉망진창일 거라 생각했는데, 한 치의 틀림도 없었다. 개판이다. 그 와중에 같이 일하는 녀석들이 뭔가 졸라대는 분위기라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숨 쉴 구멍을 좀 남겨달란 말이다!

 

허겁지겁 7H AH 77I 가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고, 내 맘에 들게끔 정리하고 나서 농담을 빌미로 어설프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아니, 화해가 아니지. 사과라고 해야 하는데. 아무튼. 창피하다. 이 나이 먹고, 짜증을 감추지 못한다는 게, 참...

 


 

하도 누워 있었기 때문인지 허리도 아픈데, 아무래도 내일 낮 근무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휴가를 냈다. × 같은 회사라고 욕하지만, 따지고 보면 참 좋은 회사다. 병가 내고 열두 달 중 무려 3개월을 반토막 내도 뭐라 안 하니까. 따지고 보면 너무 좋은 회사라서 월급 도둑놈이 활개를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일 출근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퇴근하고 와서 위스키 맛 탄산수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지 않은 지 2주가 넘은 듯 하다. 하지만, 휴가 기간에 여행을 다니면 마실 수밖에 없을 터.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는 4일에 바로 광주에 갈 생각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차에서 잘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열이 많아서 추위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차에서 자려면 이불에, 토퍼에, 베개에,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차에 다 때려넣고 가자니 부담스럽다. 그냥, 지난 번처럼 버스 타고 다녀올까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짐이 너무 많다. 낡아서 쓰레기처럼 변해가는 조화를 뽑아내고 새로 단장할 생각인지라 이것저것 많이 샀다. 그냥, 아버지 자리만 깔끔하게 치우고 술은 숙소에 가서 처먹을까 고민 중이다. 여차하면 내 차로 가서 싹 정리해놓고, 숙소 근처에 차를 세운 뒤 다시 버스로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아직은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직장 생활에 100% 만족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저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피해받지도 말자는 생각으로 일하는데,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멋진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그게 무척 어렵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지금 내가 스트레스 받는 건 7H AH 77I 한 마리 때문인데, 정작 저 염병할 ㅺ는 유유자적이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다 남한테 골고루 피해를 입히고 있음에도 아무런 패널티를 받지 않는다는 걸 납득하지 못하겠다.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너는 무능한 AH 77I OF, 너는 남한테 해를 끼치는 7H AH 77I OF 라고 악악거리는데 그래봐야 피폐해지는 건 나인 것 같다.

 


 

내일은 집에서 그냥 쉬고, 모레 병원에 간다. 진단서 받아서 또 2주 쉴 생각이고, 쉬는 동안 여기저기, 좋았던 곳 다니면서 기운을 좀 받아야겠다. 다음 달은 꼼짝없이 꼬박꼬박 나가야 하니까, 싫든 좋든 버텨야 한다. 어찌 되었든,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었음 하는 바람인데, 요즘은 날마다 어제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 지친다.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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