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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맑음 (없는 동력을 끌어올려 살림하는 날)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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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흐름으로 요즘 미스터리 어쩌고 하는 영상을 주로 보고 있다. 예전에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를 통해 알게 되었던 빌리 밀리건에 대한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검색해보니 인격이 스물네 개였다고 한다. 처음 발견된 게 열 개, 추가로 발견된 게 열네 개.

다행히 나는 온전히 나란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빌리 밀리건에게 여러 개의 인격이 돌아가며 나타난 것처럼 우울증의 증상이 돌아가면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 턴(?)에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건 무기력.

네일베에서 검색해보니 기력(氣力)이라는 건 '일을 감당(堪當)해 나갈 수 있는 정신(精神)과 육체(肉體)의 힘'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내가 앓고(?) 있는 증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무동력이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다. 움직일 마음도 없고,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한, 두 달 전에는 어딘가 조용한 곳에라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닷 바람도 맞고, 산도 다니며 나름 기운을 되찾곤 했는데 요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만사 귀찮다.

 


 

아침에 일어나면 달리 할 게 없다. 버릇처럼 컴퓨터를 켠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해서 달리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글거리가 없으니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도 등하시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시나브로 줄어 이제는 하루에 1,000명도 못 찍고 있다. 그런 걸 보면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모드.

 


 

오늘은 사무실에서 온 전화 때문에 깼다. 휴가를 확인한다고 전화했더라. 꽤나 짜증스러웠다. 내가 쉴테니 그런 줄 알라고 쉬는 것도 아니고, 전산화된 시스템에 결재 올려서 쉬는 건데, 그걸 보면 될 것을, 굳이 전화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잘 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해야 할 것만 제대로 했음 하는 바람인데 그걸 못하면서 나이 처먹고 경력 쌓아 대접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부디, 나는 저 따위로 늙지 말아야 하는데...

 


 

눈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빈둥거리다가, 샐러드로 아침을 떄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파지면 밥을 먹고, 시계를 본다. 정오가 넘으면 죄책감이 한결 덜어져 낮술을 마실 수 있게 된다. 맥주가 되었든, 위스키 맛 탄산수가 되었든, 해가 쨍쨍할 무렵부터 때려 마신다. 그러면 17시가 되기 전에 취한다. 요즘 부쩍 외로운지 사방팔방에 전화를 한다. 하다 못해 예전에 같이 일했던 양키, 캄보디아에서 가이드를 맡아준 동생한테도 카카오로 전화질을 했다.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기억이 안 나니 다음 날 몇 올 남지도 않은 머리를 쥐어뜯으며(라는 건 과장입니다. 소중한 머리칼 님을 어찌 감히...) 후회를 한다.

 

오늘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루를 보내게 될테니까, 어디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정작 나가려 하면 귀찮다. 어디도 가고 싶지 않다. 가까운 포항이나 경주를 다녀올까 하다가, 내 집 놔두고 돈 써가며 싸돌아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또 금산 여관에 찾아갈까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싱숭생숭.

 


 

갑자기 미뤄둔 이불, 토퍼 빨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있는 빨래방은 세탁기가 작아 별로.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빨래방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꽤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걸어가기에 다소 멀고 차로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인데 이불 한 채, 토퍼 하나니까 차를 가지고 갔다.

세탁기 세 대, 건조기 세 대인데 세탁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기에 나머지 두 대에 이불과 토퍼를 각각 넣고 4,500원을 넣어 빨래를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집더하기에 가서 술이나 사올까 했는데 문 열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 멍~ 하니 할 것도 없고 해서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 1,800원이다. 100원 짜리가 잔뜩 있어서 동전으로 지불. 이게 제대로 된 커피 가격이지. 스타벅스 커피는 진짜 미친 거다. 그런데도 팔린다는 게 참...

 

커피 마시며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다가 빨래가 끝났다. 건조기로 옮긴 뒤 또 500원 짜리를 여러 개 넣어 기계를 작동시키고 바로 집더하기를 향해 출발.

 


 

스키틀즈가 바로 눈에 들어와 냅다 카트에 넣었다. 술 파는 곳으로 갔더니 일본 맥주가 다섯 개에 9,900원이다. 확실히 편의점보다 싸다. 마침 할인 대상에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가 있어 열 개만 살까 하다가, 박스가 눈에 들어와 박스 채로 카트에 넣었다. 다섯 개에 9,900원이니까 한 캔 더 담아서 스물다섯 개. 일본 제품 불매와 관련해서 이래저래 말이 많은데, 나는 일본 유학 시절의 추억을 마신다는 어줍잖은 핑계로 빠져나가려 한다. 하지만, 뭐... 매국노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카스나 하이트 마시면 애국자냐고 비아냥대고 싶지만, 그건 그것대로 추잡스럽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고 마는 거지.

 

위스키가 두 병 있긴 한데 하이볼 만들어 마시기에는 비싼 녀석들이라, 저렴한 걸로 사려고 대충 봤는데 가격이 죄다 만만치 않다. 그나마 싼 게 짐빔. 32,000원이다. 한 병 담고 나니 산토리 가쿠빈이 눈에 들어온다. 39,800원이다. 하...

돈키호테에서 2,000円도 안 하는 녀석이다. 円화 환율이 바닥을 쳐서 860원대인데, 900원으로 계산해도 20,000원이 채 안 되는 녀석인데 두 배 넘게 받는다. 인터넷에서는 더 비싸게 팔더라. 맘대로 외국 다녀오는 게 가능했다면 술 사러 일본에 다녀올까 싶을 정도.

아무튼, 운동이고 나발이고, 요즘은 대낮부터 술 처먹고 퍼져 있는 게 일상인지라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카트에 담았다. 안주로 먹을 닭고기 한 팩 담은 뒤 계산을 마치니 15만 원이 넘어간다. 오늘 아침에 눈 뜰 때까지만 해도 작작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트렁크에 넣고 나서 빨래방으로 돌아가니 거의 끝나 있다. 타이밍이 좋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빨래가 끝난 녀석들을 뒷좌석으로 옮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끙끙거리며 집으로 옮기고 나서 일기를 쓰고 있다. 몇 분만 지나면 정오. 그렇다는 건... 오늘도 벌건 대낮부터 혼자 처마시고 꽐라가 되어 일찌감치 퍼져 자게 될 거다.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이 화창한 날에, 방구석에서 혼자 퍼마신다. 고독사하기 딱 좋은 환경이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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