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많으면 세 번까지 당직실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크게 하는 일은 없지만 책임이라는 걸 지고 당직을 서야 한다는 게 은근히 부담이 된다. 그 당직이, 이번 달부터 조금 바뀌었다. 기존에는 두 명이 나눠서 일을 했는데 그걸 한 명이 몰아서 하게 된 거다.
단순히 생각하면 업무량도, 당직이 돌아오는 차례도, 기존보다 두 배가 되는 게 맞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당장 이번 달만 봐도 어제와 이번 주 일요일, 두 번의 당직을 맡게 되었다. 예전보다 횟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다음 달에도 한 번의 당직 근무가 있으니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조금 늘었다. 당직이라는 게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를 일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긴 한데, 기존에는 A 하나만 신경쓰면 되었던 것이, 지금은 B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존에 A만 담당하던 사람도, B만 담당하던 사람도, 다들 불만인데 정작 결정권자는 불필요한 야근을 줄였다며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 생각하는 것 같다. 하던대로 하는 것이 익숙해서 좋다는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볼 때에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인데, 일단 해보고 나서 조금씩 바꿔 나가자고 해버리니 더 이상 투덜거릴 수가 없다.
보통은 당직 중에 자는 일이 없는데, 어제는 어찌나 피곤한지 23시가 되니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한 시가 넘어 살짝 잠이 들었는데 세 시가 넘어서야 정신을 차렸고, 여섯 시 반이 되니 또 잠이 쏟아져 비몽사몽 상태였다. 날이 더워서 이런건가 싶기도 한데, 최근에 스스로의 체력이 바닥났다 느끼고 있었기에 그 탓인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돈을 벌고 나서 여기저기 건강 식품을 사서 퍼주기나 했지 나 자신을 위해 몸에 좋은 뭔가를 먹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큰 맘 먹고 한약을 지어 먹기로 했다. 형편없는 체력은 운동 부족과 비만 때문이겠지만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럴 수 있으니 먹는 걸로 해결하자고 잔머리를 굴리는 거지. ㅋ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곳에서 약을 지어 먹었음 싶은데 검색을 해봐도 여기다! 싶은 곳을 못 찾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의원으로 갔다.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라면을 욱여 넣는 와중에 전화를 했고, 10분 만에 갈 수 있다니까 바로 오라고 해서 호로록~ 마시다시피 라면을 먹어 치우고 바로 출발했다.
바이크로 갈 생각이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그냥 차로 갔다. 내비게이션은 도착했다고 안내를 끝내버렸는데 정작 한의원은 보이지 않아 잠시 멍~ 했다. 알고 보니 예전에 몇 번 갔었던 갈비 집과 주차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갈비 집 옆이 한의원이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다가 원장님과 간단히 면담을 하고 진맥을 했다. 뭐, 한방이니 양학이니 할 것 없이 누가 봐도 뻔히 알만한 이야기를 했다. 하루 한 끼 먹는 거, 매 주 술 마시는 거, 자다가 새벽에 꼬박꼬박 깨는 거, 탈모 약 먹는 거,... 몸에 안 좋은 거 안다. 나도 잘 알지. 하지만 하루 한 끼만 먹는 건 그나마 덜 찌기 위한 몸부림이고, 술 마시는 건... 끊어볼까 생각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힘들더라고. 날마다 세 시 반에 깨는 건 30년 넘게 겪고 있는 거라 나아질 거라는 기대 자체가 없는 상황이고, 탈모 약은 안 먹을 수가 없다. 두피 문신이나 모발 이식을 고민해보긴 했는데 들어가는 돈에 비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지 않아 보류 중이다.
양 쪽 손목을 번갈아가며 잡아보는 걸로 대체 뭘 알 수 있을까 싶었는데, 희한하게 삼(蔘) 먹지 말라는 얘기를 하더라. 몸에 열이 많으니 삼이랑 안 맞는다는 얘기는 다른 곳에서도 들었더랬다. '남들은 몸에 좋다고 꾸역꾸역 먹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어 삼계탕에 있는 것도 건져 먹고, 홍삼이 소숫점 단위로 포함되어 있다는 건강 식품도 가끔 먹었는데, 몸에 좋을 게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열흘 치 약을 지은 비용이 22만 원. 당장 나오는 게 아닌 모양인지 찾으러 가던가 택배로 받아야 한다기에 내일 점심 시간에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일단 그거 먹고 다시 보자고 하던데, 한 달 정도는 먹어볼 생각이다. 운동을 병행하면 좋을텐데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배드민턴 치러 가면 딱 좋긴 한데, 사람들도 다 괜찮은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남자 회원이 더 많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빡쌘 게임보다는 설렁설렁 하는 게 스타일인지라 아줌마들이랑 치는 게 더 재미있는데 말이지.
그러고보면, 내 인생에 승부욕이라는 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투지 자체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작디 작은 사소한 싸움에서도 지지 않으려고 기를 썼는데 지금은 지는 싸움 뿐만 아니라 이길 것 같은 싸움도 피하려 든다. 분쟁 자체가 피곤하다.
그러다보니 굳이 힘으로 싸우지 않고도 재미있게 칠 수 있는 게임이 좋다. 그런 게임을 하기에 아줌마들과 복식 치는 것 만큼 좋은 게 없고.
갈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고 있긴 한데, 만날 집에서 뒹구느니 가서 한 시간이라도 치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오늘 저녁에 갈 생각...이었는데 일기 다 쓰고 편의점에서 맥주 사와서 낮술 마시면 못 가게 된다. ㅋ
예전에 오산에 있었을 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최고 선임이 되는 바람에 근무조를 비롯해 이것저것 손을 대야 하는 상황에 이른 적이 있었다. 최대한의 휴식을 보장하고자 일이 없어 사무실에 남아 시간 때우기나 해야 할 상황이 오면 같이 일하는 후배 직원들은 일찌감치 퇴근시켜버렸고, 문제가 되면 내 핑계를 대라고 하는 등 나름 배려를 했더랬다. 암기를 강요하고 손으로 써야 했던 업무 일지도 엑셀로 자동화했고.
내 나름대로 참 좋은 선배였다고, 상사였다고 자부했는데, 같이 일하는 후배들은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더라. 업무를 제대로 해야 휴식도 보장을 해줄텐데, 해야 할 일은 엉망진창으로 하면서 쉬게 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거지. 이건 누가 봐도 부당한 거다. 그동안 너무 잘해줬다 싶어, 좀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날 교육 받으러 나오라고 했다.
걔네들만 나와서 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위해서라면 나도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잖아.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라 판단해서 월급 받고, 휴가도 실시할 수 있는 건데, 한 사람 몫을 못하면 안 되잖아.
그런데 그걸 가지고 갑질한다고 신고했더라.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배려해준답시고 남들은 사무실에 남아 허송 세월하고 있는 동안 퇴근하게 해주고, 휴가도 가고 싶은 날 먼저 가라고 양보했던 것들이 바보 짓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 돈 들여 밖에서 먹을 거 사 먹이고 잘 하고 있으니 열심히 하자고 토닥토닥했던 과거의 내가 혐오스러웠다.
지서장은 내가 어떤 의도로 그런 지시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며 경고장을 수여했다. 전 직원이 다 모인 앞에서.
상장도 그런 식으로 받은 적이 없는데.
그 때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결국 정신과를 찾아갔고 우울증 판정을 받아 병가를 쓰고 쉬어야 했다. 정신과 약의 부작용도 겪어야 했고.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때 내게 수치심을 안겨줬던 7H AH 77I들 세 놈을 아직도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에서 나와 비슷하게 당한 사람이 나왔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된 직원이 중간 관리자를 갑질한다는 이유로 신고했다더라. 그 일 때문에 쾌활하던 사람이 기가 푹 죽어 지내는 걸 보니 안스러웠고 예전의 내 생각이 났다. 사람마다 대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으니 신입 사원이 봤을 때에는 갑질이라 생각할만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참 곤란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이 되어줘야 한다는 건 알겠더라. 내가 미리 겪어봤던 일이잖아.
내가 볼 때에는 오히려 저 신입 사원이 이상한 ××다. 동기들 다섯이 같이 왔는데, 항상 저들끼리 붙어다닌다.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같이 하고, 심지어 한 명이 당직을 서면 죄다 남아서 같이 떠들고 놀다 간다. 동기라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친목질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사이가 유난히 돈독한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업무 시간에도 슬그머니 찾아와서 동기들끼리 속닥거리다 키득거리며 웃는 걸 보면 대체 뭐하는 건가 싶다. 게다가 신고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는 동기 다섯 중 가장 일을 못하면서도 뺀질거리는 ××다. 대체 왜 저런 게... 싶은 ××인데 결국 시끄럽게 만들었다.
본사에서 나와 조사를 한답시고 몇 명을 불러 사정을 듣고 간 모양인데 나는 안 부르더라. 불렀다면 신랄하게 깠을텐데 말이지.
신입 사원이 기존에 있던 이들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말이 전부 옳다 생각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일도 안 하고 행선지도 알리지 않은 채 다섯이 죄다 사라졌다가 회의하는 도중에 우르르~ 들어오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내 적대감이 느껴지는 모양인지 다섯 중 하나가 자동차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붙이던데,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없어서 대충 몇 마디 하고 말았다.
저~ 위에서 뒤통수 쳤다는 세 놈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그 중 한 놈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다시 들어왔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다더니, 이렇게도 된다. 당시 내 일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그랬겠지. 그 때는 생각이 짧았었다며, 나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단다. 하... 그러면 직접 전화를 하던가 문자라도 할 것이지, 남한테 그렇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일언반구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내 기준에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7H AH 77I 일 뿐이다. 여기에서 만난 다섯도 마찬가지고, 회사 그만둘 때까지 상종을 안 할 수 있었음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어디에서 만나더라도 엮이지 않고 싶다.
주절거리다보니 길어졌는데 슬슬 편의점에 가서 맥주나 사다 마셔야겠다. 한의원에서 약 먹는 동안 술 마시지 말라 할 게 뻔하니 오늘은 마셔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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