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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4년 08월 10일 토요일 흐림 (기절하듯 잠듦/도서관/심심)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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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주섬주섬 뭔가 꺼낸다. 화장품이다. 퍼프라고 하나? 동그란 스펀지 같은 거. 그걸 꺼내서 펑! 펑! 펑! 소리가 나도록 얼굴에 때려 박는다. 출근 마지노 선까지 간당간당한 것도 아닌데, 한~ 참 그러는 것도 아니고, 대략 1~2분 정도 두드리는 것 같은데, 저럴 거면 집에서 하고 출근해도 되는 거 아냐? 애써 못본 척 하면서도 소리가 들리니 꽤 언짢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공공 장소에서 화장을 하거나, 고치거나 하는 걸 끔찍히 싫어한다.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손톱 깎는 것도 무례하다 생각하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난히 조용하다 싶어 살며시 눈을 흘겨 뭐하나 봤더니, 숙면을 취하고 계신다. 조는 게 아니라 미동도 하지 않고 잔다. 저렇게 앉아서 잘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 본인의 얘기를 꺼내놓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남자 친구랑 전화로 싸우느라 몇 시에 잤네, 어쩌네 온갖 얘기를 다 했었는데 그래놓고 저렇게 자면 곱게 볼 수가 없지.

사무실에서 숙면을 취하는 게 저 사람 뿐만이 아니다. 뒷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잔다. 거의 날마다 자는 것 같다. 자다 깨면 한~ 참 동안 자리를 비우고.

둘 다 20대인데 어찌 저럴꼬?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거나, 남들이 10분 동안 할 일을 5분 만에 끝낸다거나, 그런 것도 좋지만 성실한 게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사무실에서 저렇게 대놓고 자는 걸 보면 곱게 안 보인다. 뭐, 요즘 한가한 편이라 나도 졸릴 때가 많긴 한데 기를 쓰고 안 자려 하거든. 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자는 걸 보면 졸리다고 그냥 자버리는 것 같아 자세가 불량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한가한 요즘이다. 얼마 전까지는 스스로 만든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 출근해서 마저 하고, 또 새로운 일을 만들어 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일은 다 마치고 퇴근한다. 그러니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은 뭘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한 시간 반을 먼저 나왔지만, 사무실에 일이 생기면 해결하러 가야 하는 당번에 당첨되어 술도 못 마시고 얌전히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마트에 간다는 동료에게 부탁해서 고모께 드릴 홍삼 음료 받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21시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새벽에 깼는데 일찍 자서 그런지 세 시가 아니라 두 시에 깼다. 예약 종료를 걸어놓은 에어컨은 꺼져 있었고 컴퓨터는 켜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굉장히 더웠다. 보일러의 실내 온도계에는 31이 찍혀 있었다. 선풍기를 틀고 이내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이 떠졌을 때에는 네 시가 살짝 넘어 있었고, 다시 잠들지 못해 손전화를 잡았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다. 잠이 덜 깨서 방금 온 연락인가 싶어 다시 봤더니 23시가 조금 넘어 문자를 보낸 뒤 답장이 없으니까 전화를 했더라. 그걸 못 받은 거고.

잠에서 잘 깨는지라 문자 소리에도 쉽게 깨는데, 어제는 어지간히 깊이 잠든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잠든 뒤 초반에 깊이 잠들었다고 핏빗 앱에 기록되어 있더라.

부랴부랴 답장을 했더니 장비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아침에 조치 취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일단 아침에 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누룽지를 불려 아침을 먹은 뒤 전자레인지에 약을 데워 호다닥 마시고 사무실로 향했다. 도착하니 여섯 시 45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봐서 대충 상황 파악을 했다. 아... 이건 내가 있으나 마나다. 어제 제 때 전화를 받았다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일 아니라 모르겠네요 할 수도 없으니, 일단 할 수 있는 점검은 다 했다. 우리 쪽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다. 다행히 장비 담당하는 직원이 들어와서 조치에 들어갔다.

 

나는 내 자리에서 잠깐 일 좀 보고, 빈둥거리다가 슬슬 나갈 때가 되어 그동안 복구가 되었는지 확인해봤는데 아직도 복구가 안 됐다고 하더라. 그 사이에 장비 담당자가 두 명이나 더 들어와 있었다. 일단 우리 쪽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오늘 처음 당직 서는 사람이 있어서 잠깐 들려 별 거 없으니 편하게 근무해도 된다고 몇 마디 나누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땡볕인지라 선블록도 바르고 장갑도 챙길 겸 집에 들릴까 하다가 바로 도서관으로 향한 것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은 거의 막히지 않았다. 보통 느릿느릿 가는 차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은데 오늘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다른 곳보다 조금 싸서 종종 이용하는 주유소가 있는데 마침 밥 먹일 때가 되었더라고. 들릴까 하다가 주유소에 가면 도서관까지 꽤 돌아가야 한다 싶어 다른 길로 갔는데, 생각해보니 그 길로 가도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급히 차를 돌려 주유소로 향했다.

한 칸 남았을 때 2만 원 어치를 넣으면 가득 차는데, 주유를 마친 뒤에는 꽉 찬 걸로 떴지만 이내 한 칸이 줄어드는 걸 보니 가득은 아닌 모양이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입구에 주차했다. 주차장에 빈 자리가 없어 돌고 도는 차가 두 대나 보였다. 처음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평일이든 휴일이든 빈 자리가 없다. 차 가지고 가면 이마트에 세우는 게 확실히 낫다. 그나마 바이크로 가면 주차 걱정은 안 되지만.

 

미리 빌릴 책을 정해서 갔기에 금방 일을 마쳤다.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직진하고 있는데 옆 차로에서 깜빡이도 안 켜도 슬슬 밀고 들어온다. 어? 어어? 들어오다가 뒤늦게라도 날 발견하고 멈출 줄 알았는데 그냥 들어온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어 싸울 생각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영감이다. 차로를 바꿔 운전석 쪽으로 붙은 뒤 노려 봤다. 기를 쓰고 앞만 보더라. 미안하다고 손짓이라도 할 것이지, 사람 죽이려 들어놓고 모른 척이라니... 맘 같아서는 신호 걸렸을 때 내려서 헬맷으로 내려 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상상으로 그쳤다.

 

돌아오는 길은 상당히 막혔다. 주말이라 해도 이렇게 막히지는 않는데 희한하다 싶더라니, 앞에 굴삭기 한 대가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고작 굴삭기 한 대가 느릿느릿 달리는 것 뿐인데 이렇게 잔뜩 막히다니...

 

집에 와서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빈둥거리는 중이다. 단양에 가서 하루 자고 올까 하다가, 집 놔두고 굳이 돈 쓰지 말자 싶어 가지 말자 하다가, 바람이라도 쐴 겸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올까 하다가,... 두 시간이 지났다. 아직은 떠나기에 늦지 않았으니 다녀와도 될 것 같긴 한데...

검색해보니 얼마 안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죽주산성에나 다녀와봐야겠다.

 

일본 지진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2016년에도 한 달 전에 지진이 나는 바람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어째 이러냐. 자연 재해로부터 안전한 오카야마인데, 난카이 트로프가 터지면 오카야마 쪽 피해도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요나고는 그나마 피해가 덜 하겠지만 지진 나면 돌아오는 비행기 편이 바뀐다던가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당분간은 긴장하며 분위기를 봐야 할 것 같다. 대충 주워 입고 드론만 챙겨서 죽주산성 다녀와야지. ㅋ

 


 

하도 안 써서 물처럼 변해버린 BB 겸 선블록을 대충 처바르고, 팔토시를 한 후 집을 나섰다. 바이크 탈 때 끼려고 산 골프 장갑을 깜빡한 게 떠올랐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귀찮아서 그냥 갔다.

길이 막히지 않아 맘껏 달릴 수 있었고, 길이 애매해서 잠시 헤매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죽주산성에 도착. 주말이라 사람이 꽤 있을 줄 알았는데 주차장에는 티볼리 한 대 뿐.

근처에 바이크를 세웠는데, 멈추자마자 날파리가 미친 듯 달려든다.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말도 안 되게 덤벼들어 바이크를 세우지 못하고 한 쪽 옆으로 피신해야 했다. 마침 그 쪽에 길이 나 있어서 여긴 어딘가 싶어 올라가봤더니 막다른 길. 절 뒤 쪽인 것 같았다. 가까스로 바이크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온 뒤 달려드는 벌레를 손으로 처내고 입으로 불어가며 간신히 내렸다.

 

길을 따라 출발하는데 맞은 편에서 내려오는 중년 남녀 한 쌍. 아마도 티볼리를 타고 온 분들인 듯 하다. 날벌레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

 

《 울창하다 》

 

《 얼마 걷지 않아 금방 성문 같은 게 보인다 》

 

 

《 포루? 라고 쓰여 있었던 같다. 올라가서 드론 띄우려고 저 쪽으로 향했는데... 》

 

《 뱀이라도 나오면 큰 일이겠다 싶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다 》

 

《 이 길을 보고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진짜 뱀이라도 나올 것 같다. 》

 

《 출발한 지 5분이나 됐으려나? 제법 경사가 있다. 더는 못 간다. 》

 

《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다른 쪽으로 가다가... 쇠파리와 개구리를 보고 바로 Back! 》

 

 

와... 이건 아니다. 일단 포루 쪽은 너무 울창해서, 진짜 뱀이라도 나올 것 같은지라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계단 아래의 평지는 진입하자마자 짝짓기 중인지 쇠파리 세 마리가 뭉친 걸 봤고(아오모리였나? 거기에서 열차 기다리다가 물린 기억이 있어서 질색이다, 쇠파리는.) 거대한 개구리가 풀쩍 풀쩍 뛰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뒤돌아서 나왔다.

불룩한 배를 앞세워 걷는 아저씨와 그 뒤를 따르는 중년의 아주머니, 딸내미로 추측되는 젊은 처자와 엇갈렸는데 날벌레들 때문에 처자가 꺅~ 꺅~ 소리를 지르며 올라가더라.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돌아오기가 아쉬워서, 근처에 있는 저수지에라도 가서 드론을 띄우려 했는데 막상 갔더니 드론을 띄울 맘이 싹 사라지는 풍경인지라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해보고 싶어 그려본 인생 그래프. 태어났고, 즐겁게 유치원에 다녔고, 국민학교 저학년 때에는 여기저기에서 이쁨 받으며 나름 즐겁게 보냈다. 고학년이 되면서 삶이 고달파졌고, 성적을 내팽개친 덕분에 노느라 즐거웠지만 그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좀 힘들었다. 군대에 갔고, 그냥저냥 살다가 전역. 3년 동안 사회의 쓴 맛을 보다가 지금의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합격의 기쁨은 이내 사라졌다. 투덜거리며 다니던 중 술 처먹고 잔뜩 쌓인 스트레스를 애먼 곳에 푸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 만난 前 여자 친구, 現 남과 헤어지면서 바닥을 찍는다. 시간이 약이라고, 슬금슬금 점수가 오르다가, 오산에서 일할 때 뒤통수 맞으면서 다시 바닥을 찍게 되고, 정신과 다니며 약 기운으로 버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도망가는 길을 선택, 일본 유학을 떠났고 40년 넘게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걱정 속에 복직했는데 다행히 잘 적응해서 나름 즐거웠고, 원치 않는 이동을 하게 되어 경산 땅을 밟았지만 벌레만도 못한 쓰레기 ㅺ를 만나는 바람에 인생 최저점을 찍는다. 역시나 정신과를 다니며 약에 의존해야 했고. 그러다 ○○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지금은 그냥저냥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중. 지금 바라는 건 그만둘 때까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여기에서 버티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람이니... 그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게 희망사항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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