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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2024 요나고 여행: ③ 둘째 날, 사카이 미나토 요괴 마을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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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여러 번 깨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잤다. 자고 일어나서 손전화를 보니 여전히 친척 누나로부터 연락 온 게 없다. 일단 온천에 가서 대충 씻고, 호텔 바로 뒤에 있는 바다로 향했다.

 

 

 

 

 

 

 

 

 

 

 

 

날씨도 좋고,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해서 마음에 차분~ 하게 가라앉았다. 이 좋은 바다를, 8년 전에는 방에서 바라보기만 했고나 하고 후회를 했더랬다.

어제 사놓고 마시지 않았던 맥주를 아침부터 마시며 산책을 한 뒤 방에 돌아왔는데 그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어제 저녁부터 열 시간 가까이 소식이 없는 셈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불안해졌다. 방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고, 톡을 보내도 읽지 않는다. 설마 바다 산책한다고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자고 일어난 건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여덟 시 반이 되면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 진짜로. 손에서 전화기를 내려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한~ 참 뒤에 연락이 왔다. 어제 저녁에 산책을 다녀왔고, 나한테 연락이 없어서 잔다고 생각해 깰까 봐 연락하지 않았단다. 아침에는 온천에 다녀왔고, 톡은 온 지 몰랐다 한다.

 

 

하아... 걱정한 내가 너무나도 바보 같다. 짜증이 확~ 났지만, 돈 쓰고 시간 써가며 여행 와서 짜증내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침 식사가 아홉 시까지였는데, 어제 분명히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라고 얘기했는데, 여덟 시 반이 넘어서야 밥을 먹으러 갔다. 끝물이라 그런가 반찬도 떨어진 게 많았고, 딱히 먹을 게 없더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에서 나갈 준비를 마친 뒤 바로 길을 나섰다.

 


 

버스가 바로 도착해서 요나고 역까지 금방 갈 수 있었다. 『 게게게의 기타로 』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그려진 전철이 유명하니까 당연히 전철을 탈 생각이었는데, 확실한 게 좋으니 안내 센터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싶더라고. 사카이 미나토에 가려 한다고 했더니 전철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에!?

 

다행히 버스로 가는 방법이 있어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한적하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

 

버스에서 내리자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이 신나서 뛰어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 극장판이 개봉하긴 했지만 『 게게게의 기타로 』는 꽤 오래전 작품인데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이 신기했다.

제법 긴 상가 거리를 걸어야 했는데 고모에게는 무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힘들어 하실 거고, 어찌저찌 걷는다 해도 내일부터는 꼼짝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내 센터에 가 휠체어를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한쪽 구석에 휠체어가 세워진 게 보이기에 빌릴 수 있겠고나~ 하고 물어봤는데 빌려준단다. 그러면서 어디에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어로 응대를 해주신다. 나는 어떻게든 일본어를 쓰고 싶은데... ㅋ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고, 안내 센터가 문을 닫기 전(17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긴가민가 싶다)에 반납하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셨다.

 

고모는 휠체어에 타고 다니는 게 남사스러운지 내키지 않은 눈치였지만 가야 할 길을 보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상당히 긴 거리였으니까.

 

 

여기저기 장식된 요괴들을 보고, 상가에도 들어가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기 생일에 맞춰 살 수 있는 열쇠 고리가 있어 고모 것을 사드렸고, 친척 누나는 가족 것을 다 사려 하는 걸 말려서 자기 것만 사게 했다. 딸내미, 아들내미 준답시고 다 산다는데 젊은 애들이 그런 걸 달고 다닐 것 같지 않았으니까.

 

상가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반대 쪽도 구경을 했다. 친척 누나는 밥보다 빵, 빵보다 커피 & 군것질인 사람인지라, 이 때도 커피 타령을 해서 손님이 하나도 없는 카페에 들어갔다. 휠체어를 끌고 있었기에 사장님에게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는데 밝게 웃으면서 어서 오라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데리야키 소스가 뿌려진 밥 버거와 커피를 주문해서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역으로 향했다.

 

 

 

 

 

휠체어를 반납하고 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 역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사카이 미나토 역은 개찰구가 없어서 열차를 타려면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줘야 한다. 이코카 같은 IC 카드는 리더가 설치되어 있어서 역무원이 있을 때 찍고 타면 되고.

 


 

사카이 미나토에서 요나고까지는 330円(2024년 09월 기준). 미리 표를 구입해서 고모와 친척 누나에게 나눠줬다.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열차가 들어와 플랫폼으로 향했는데 고모가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역무원이 부르는데 안 들리는지 그냥 막 간다. ㅋㅋㅋ

그냥 가면 어떻게 하냐고, 표 보여주고 가라고 했지 않냐고 잔소리를 하니까 '본 줄 알았지~' 하면서 머쓱해하신다. ㅋㅋㅋ

 

 

 

역에 도착했고, 버스를 이용해 숙소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에서의 내 계획은 오전에 관광지 한 군데만 가는 것이었다. 하루에 몇 군데를 다니는 건 고모에게 무척 힘든 일이 될 게 뻔하니까, 오전에 한 곳만 다녀오고, 오후에는 고모와 친척 누나가 숙소에서 쉬는 동안 나는 서점에 가든, 돈키호테에 가든,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 거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어디를 다녀와도 점심때가 훌~ 쩍 지나 있더라. 결국 여행 중에 단. 한. 번. 도. 혼자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사고 싶었던 것들도 당연히 사지 못했고.

 


 

고모와 친척 누나가 온천에 다녀올 동안 나는 바다로 가서 물에 몸을 담궜다. 제법 깊어 보였는데 한참을 가도 아슬아슬하게 발이 닿는 수준이라 놀기 딱 좋더라.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50m는 고사하고 20m도 못 갔는데 숨이 차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결국 땅 짚고 헤엄치며 시간을 보냈다.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손전화用 방수팩을 샀는데 그게 참 유용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한 시간 남짓 놀고 나서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 바깥 쪽에 무료로 쓸 수 있는 샤워 시설이 있었는데 그걸 몰라서 한쪽 구석에 있던 수도에서 발에 묻은 모래만 씻어냈다. 이후 호텔 카운터에서 다시 안내를 받아 세탁기와 건조기 위치를 확인하긴 했는데...

 

어째 영~ 부실하다. 지저분하기도 하고.

 

호텔 근처에 동전 빨래방이 있긴 했지만 밖에서 볼 때에도 사용 금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그닥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구글 지도의 평가도 엉망이더라. 아쉬운 대로 호텔에 있는 세탁기로 대충 빨고, 건조기를 돌려 말린 뒤 가방에 넣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세탁 서비스와는 별개입니다. 화장실에 빨래감을 담으라는 봉투가 있는데, 거기에 담아 문 앞에 두거나 카운터에 갖다 주면 됩니다.)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호텔에 있는 식당이 그닥인지라 근처에 갈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은 곳이라며 평가가 좋은 회전 초밥 가게가 있기에 그리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휠체어를 빌려 2㎞ 넘게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입구에 대기석이 제법 크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가득 차 있더라. 혼자였다면 바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겠지만, 고모와 친척 누나에게 현지인이 좋아하는 가게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대기 표를 뽑고 40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레일 위를 돌고 있는 초밥을 하나 내려 고모 앞에 두고, 친척 누나에게 태블릿을 넘겨줬다. 태블릿으로 먹고 싶은 걸 주문하는 시스템인 거다. 두 개 정도 주문하고 나한테 넘겨주면 나 역시 두 개 정도 주문을 하고, 그렇게 번갈아가며 주문하면서 먹으면 될 텐데 한~ 참을, 정말 한~ 참을 붙잡고 넘겨줄 생각을 안 한다. 결국 나도 주문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 마디를 해서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하아... 진짜... 돈은 돈대로 쓰고, 짜증은 짜증대로 나고... 이래서 혼자 다니는 게 좋은데, 내가 미쳤지.

 

 

오징어나 조개 초밥은 거의 없고, 새우도 레일 위에서 방치된 탓에 말라가는 녀석 밖에 안 보인다. 그거라도 집어 먹었다. 그렇게 아쉬운 대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친척 누나가 레일에서 새 접시를 집어 든다. 그때 눈앞에 보이는 와사비 묻은 밥 덩어리. 접시 위에 샤리만 남아 있는 거다. 왜 밥만 있냐니까 배가 불러서 생선만 먹었단다. 하... 하하... 하하하... 샤리는 놔두고 네타만 집어 먹었으면서 다른 초밥을 또 집어든 거고나.

게다가 고모는 배가 부르다며 더 이상 안 먹겠다고 했는데, 친척 누나가 이건 안 먹어본 거라며 접시를 내려 앞에 갖다 놨다. 고모가 나한테 하나 먹으라고 하는데 생선은 좋아하지 않으니까 안 먹겠다고 했더니 먹으려던 초밥을 내려 놓고는 다시 레일에 올려놓으라고 한다.

후아...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다. 고모, 그러면 큰 일 나~ 엄청난 민폐야~ 라고 알려주면서도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누나가 사케를 먹고 싶어해서 주문을 했더니, 얼음이 가득 담긴 잔에 사케가 담겨올 줄 알았는데 자그마한 병에 담긴 게 오니까 영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결국 반만 마시고 내려놓는 바람에 남은 건 내가 마셔야 했다.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이렇게 화가 나서 어떻게 하지?

내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건 남한테 폐 끼치지 않으려 하고, 나도 당연히 남 때문에 언짢은 일을 겪지 않으려 하는 게 맘에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다니면 온~ 통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잔소리하게끔 만드니 짜증이 쌓이고 또 쌓인다.

 

고모는 배가 부르다 하고, 친척 누나도 그럭저럭 먹었다는데, 나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혼자 먹어도 10만 원 가까이 나오는데, 셋이 먹은 게 6,600円이었다.

 

 

다시 휠체어를 밀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요시노야도 보이고 가츠동 가게도 보인다. 차라리 저기에서 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들고 갔지만, 어찌나 피곤한지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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