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다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차에 오르자마자 투둑~ 투둑~ 으로 바뀐다. 이 정도면 비가 간절한 지역에 돈 받고 방문해서 강수량 늘리는 걸 업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아오...
다음으로 갈 곳은 조각 공원.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있다고 한다. 통영의 남망산 조각 공원 같은 분위기일까? 일단 가보자.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갔더니 목적지 근처라며 오른쪽의 오르막 길로 빠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오르막 길이, 도저히 차로 갈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골 농로로 들어가는 길처럼 보이는 거다. 좁고, 가파르고. 아닐 거야, 여긴.
그냥 지나쳐 크게 한 바퀴 빙~ 돈 뒤 다시 시도했지만 역시나. 이건 아니다 싶어 결국 조각 공원에 가는 건 포기했다. 바로 다음 목적지로 변경. 안면도 자연 휴양림이라고도 불리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다녀온 뒤 검색해보니 자연 휴양림이랑 수목원은 지도 상의 위치가 다르다. 내가 헷갈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T^T)
입장료가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돈을 내야 하는 곳이었다. 과자 한 봉지도 사지 못할 정도로 저렴한 금액이긴 하지만 돈을 낸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기에 당황했다. 내부에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숙박하려고 방문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더라고. 숙박인지 방문인지 물어보더라. 구경하러 왔다고, 한 명이라고 얘기하니까 충남도민인지 확인을 한다. 주소지가 충남으로 되어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한 모양. 안내문을 보니 국가 유공자 얘기도 있어서 유공자증을 스윽~ 내밀며 쓸 수 있냐고 여쭤봤다. 입장료와 주차료가 면제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원래는 안에서 해야 하는데 그냥 입구에서 하겠다면서 QR 코드 찍는 것과 발열 체크를 매표소에서 했다. 카카오 톡을 이용해서 QR 코드 체크 인을 해왔으니까 카카오 톡을 실행했는데 갑자기 인증을 받으란다. 한 달에 한 번은 인증을 받아야 한다네? 인증 번호가 금방 문자로 도착하긴 했지만 번거로웠다. 매표소 쪽에는 지붕이 없었기에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차 안으로 비가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왔다. 비 오는 날을 감안해서 매표소 쪽에 지붕을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열감지 카메라가 체온 측정 중이라고 쓰여 있지만 거~ 짓~ 말~
사진 찍으라고 쥐알만한 의자도 갖다 두고. ㅋㅋㅋ
입구 근처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장승을 볼 수 있었다.
찍을 때에는 그저 모양을 냈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공룡 모양인지도...
교토의 유명 관광지인 킨카쿠지(금각사)에 가면 리쿠슈노마츠라는, 600년 된 소나무가 있다. 금박 입힌 건물에 눈이 돌아가 안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그 나무도 유명한 거라고 알려져 일부러 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 뭐, 일본 여행 자체가 안 되는 시기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소나무와 뭔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핑크 뮬리 있는 곳의 나무들을 보니 일부러 공룡 모양으로 깎은 게 아닌가 싶더라.
솟대 모양의 장식물들도 나오고
고즈넉해서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별을 꿈꾸는 나무란다.
땅에 떨어져 잔뜩 쌓여있는 낙엽이 예술이다, 진짜.
인위적으로 만든 것보다 이런 자연적인 게 훨씬 감동을 준다. 예전에는 일부러 단풍 보러 다니는 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이 먹으니까 일부러 다닐만 하고나 싶다.
손전화 카메라 성능이 아무리 좋다 한들, 줌은 아직 DSLR 못 따라간다. 갤럭시 S20+의 30배 줌이 이 정도.
약간만 당겨 찍는 건 나쁘지 않다.
산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같은 게 멋있어서 찍었는데 송홧가루 날리는 것처럼 찍혀서 실망. つ´Д`)つ
차 살 때 받은 우산을 처음 쓴 날. 하나 더 달라고 해볼까나... ㅋ
동백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산책로에 빨갛게 물든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아래에 낙엽 쌓인 게 정말 멋있었다.
바람이 불거나 새들이 앉으면 나뭇잎 몇 개가 팔랑팔랑 떨어지는데 나무 아래에 저렇게 쌓여 있는 게 절경이었다.
사진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딱 예상하는 그 냄새, 그 습함. ㅋ
아무도 없는데 습하고 그러니까 좀 무서웠다. ㄷㄷㄷ
자란이 짜란~ ……… 죄송합니다. ╥﹏╥ (구기자인 줄 알았는데.)
보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도 핑크 뮬리... 에라이...' 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예쁘긴 하더라. 사람들이 환장하는 이유가 있고나 싶었다.
하이라이트는 여기!
아산원 되시겠다.
들어서자마자 와~ 하고 멈춰 섰다. 돈 있으면 이렇게 지어놓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딱 그런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툇마루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집이라...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장지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열면 안 되는 건가? 그렇다면 잠겨 있거나 손대지 말라고 쓰여 있을텐데...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더니,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어린이들이 보기에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긴 했는데 저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다. 그저 밖에서 경치만 보는 게 아니라는 게 특히 좋았다. 온돌이 후끈하게 달궈져 겨울에는 더욱 더 매력적인 공간.
교토에 가면 항상 에이칸도(영관당)에 갔다. 지금은 제법 알려져서 한국인들도 꽤 많이 가지만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중국인 약간을 제외하면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근처에 있는 긴카쿠지(은각사)나 난젠지(남선사)에 비하면 유명하지 않은 곳이니까. 하지만 일본에서는 단풍 보는 명소로 알려져 가을에만 입장료가 일곱 배 가까이 오를 정도로 유명한 장소이다. 내가 저 곳을 좋아하는 건 나무로 된 툇마루에 걸터 앉아 느긋하게 정원을 보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인데 아산원이 딱 그랬다. 한동안 툇마루에 앉아 멍~ 하니 비 내리는 걸 보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
현대 그룹에서 만들어 기증하고 고 정주영 氏의 호를 따 아산원이라 이름을 지었다더라. 딱 살고 싶은 곳, 내가 꿈꾸는 풍경을 안은 집이었다.
별 생각없이 방문했는데 의외로 규모가 커서 제대로 즐기면서 보려면 서너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았다. 그저 '나 거기 가봤어.' 할 요량으로 간 거라면 한 시간 정도 대충 걷다 말겠지만, 이런 곳은 최대한 여유있게 천천히 보는 게 좋다. 나는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반도 못 본 것 같다.
툇마루에 올라가려고 신발을 벗었더니 양말이 젖어 있었다. 어쩐지 찝찝하더라니. 더 걸으면 신발에서 찌걱찌걱 소리나는 대참사를 겪게 될 것 같아 슬슬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커다란 나무 뿌리에 뭐라고 써붙여놨기에 봤더니 얼마 전의 태풍에 쓰러진 나무라고 한다. ㄷㄷㄷ
2020 안면도 여행
0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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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안면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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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안면암 부교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46
04. 안면도 수목원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47
05. 에코앤힐링 게스트하우스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48
06. 원산안면대교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49
07. 원산 해수욕장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50
08. 고남 패총 박물관
└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2151
09. 새만금 홍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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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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